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대구지역 '경찰과 도둑' 모임 모집 글 <당근, 카카오톡 캡처>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7시. 영하 5도의 맹추위 속에 대구 북구 관음운동장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가만히 서 있어도 귀와 코가 얼얼해질 만큼 찬바람이 매서웠지만, 운동장 한가운데서는 웃음과 비명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10대부터 30대까지 40여 명이 모여 '경도(경찰과 도둑)'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규칙은 단순했다. 등에 '경찰'을 붙인 참가자가 '도둑'을 잡으면 감옥으로 데려간다. 경기는 도둑이 먼저 흩어져 달아나며 시작됐고, 잠시 뒤 경찰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추격에 나섰다. 운동장 한쪽에는 잡힌 도둑을 모아두는 '감옥'이 마련됐다. 감옥을 지키는 경찰도 제 역할에 충실했다. 아직 잡히지 않은 도둑이 감옥으로 뛰어들어 "탈출"을 외치면, 갇혀 있던 도둑들이 한꺼번에 풀려나기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어서다. 한 판은 10분 남짓. 숨을 고를 틈도 없이 "한 판 더"라는 외침이 이어졌고, 경기는 내리 세 차례 진행됐다.
몸이 충분히 풀리자 이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놀이를 바꿨다. 술래의 구호가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달려 나갔다가, 고개가 돌아가는 순간 일제히 멈춰 섰다. 넘어지고, 웃고, 다시 뛰었다. 두꺼운 외투는 어느새 벗겨졌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숨은 거칠게 올라왔다.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놀이는 짧은 인사와 함께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대규모 술래잡기' 모임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지역 기반 중고 거래 앱 '당근' 등에 시간과 장소를 공지한 뒤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이 초면인 사람들이 모여 즉석에서 팀을 나눠 놀이를 즐긴다.
당근 커뮤니티에도 다양한 모집 글이 올라와 있다. 한 게시물에는 "1월 3일 오후 8시, 대구 ○○고에서 새해를 기념해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함께할 20대 남녀를 모집한다. (스무살이 된) 2007년생도 참여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다른 글에는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 보고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대부분 성인 모임이라 아쉬웠다"며 "2009~2007년생 위주로 경도를 해보고 싶어 모임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해당 모임들에는 참가자가 많게는 300명대까지 있다.
다만 이 같은 놀이가 주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연령 제한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참가자들의 아쉬움을 반영한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한 90년대생 대상 오픈채팅방 운영자는 "다른 모임은 주로 10대나 20대 위주라서 '경도의 시초'라 할 수 있는 90년대생끼리 대구 야외음악당에서 모이자"고 제안했다.
실제 참여자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낯선 사람들과의 즉흥적인 놀이가 오히려 부담을 덜고, 즐거움을 키운다고 말한다.
대구의 한 대학생은 "어릴 때로 잠깐 돌아간 기분이었다"며 "도둑 역할을 하다 넘어져 손에 피가 조금 났는데, 너무 즐거워서 아픈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게 오히려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참가자 이모(24)씨도 "오히려 서로 모르는 사이라서 더 해방감을 느꼈다"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동심이 자리해 있다는 걸 체감한다"고 했다.
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