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 대구대 총장
주말 아침이라 모처럼 여유를 부려본다. 겨울철이라 늦게 뜨는 태양도 어느새 동산 머리를 떠나 높이 떠오른 시간이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뒤척거린다. 연말부터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았고 지난 며칠은 상당히 바쁘게 지냈다. 주말에는 잠시 여유를 가져도 될 듯하다. 동지를 지난 지도 제법 되었으니 이제 해가 더 빨리 뜨고 낮의 길이가 차츰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핑계 삼아 떠올리면서 덮어쓴 이불을 슬쩍 끌어당겨 본다.
새해 첫날에 해돋이를 보려고 서둘렀던 일이 불과 며칠 전이다. 태양은 매일 어김없이 뜨는 것이 자연이 정한 이치지만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에 뜨는 해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 새해 첫날을 기다렸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젊은 시절에는 작심삼일이란 말이 늘 부담스러웠고 첫 주말이면 신년 벽두에 다진 각오를 거듭 생각하며 다지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제부턴가 그런 기억도 흐릿해졌다.
젊은 시절에는 할 일도 많았고 늘 바빴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다졌던 각오도 만만치 않았고 항상 소망한 일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은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요즘 젊은이들이 인생에 대한 불안이 크고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청춘의 시간은 참으로 값지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연의 시계는 일정한 크기로 무심하게 흐르지만 우리네 인생의 시간은 의미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시간의 값어치는 저마다 다르다. 60대의 일 년은 살아온 인생의 60분의 1이지만 20대의 일 년은 20분의 1에 해당한다. 스무 살 청춘의 일 년은 그만큼 가치가 크다. 노력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살아갈 인생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설령 실패하더라도 회복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치열하게 도전할 가치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퍼뜩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난다. 텔레비전을 켜니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나 있다. 국제적으로는 단연 전쟁 뉴스가 걱정이다. 지난해부터 고조되어온 미국-베네수엘라의 긴장이 기어코 전쟁으로 번졌다. 외신은 온통 실시간 속보를 쏟아내고 있다. 거듭된 휴전 논의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확전하는 양상이다. 중동에서도 분쟁이 끝나지 않고 태국-캄보디아도 전쟁 중이다.
개방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평화 속에 함께 번영해온 국제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존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국가들이 저마다 관세의 장벽을 높이 쌓아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고 강대국은 힘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약육강식하는 국제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100년 이상 가는 평화가 드물었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가 저무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내 소식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새삼 되풀이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국제 통상 환경이 어느 때보다 힘든 데다 내수 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고용 시장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을 지나고 있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균열도 큰 걱정이다. 새해 벽두에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고 소망했던 일들을 새삼 떠올리며 올 한해 세상의 안정과 평화를 다시 한번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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