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시각예술가
필자는 회화를 매체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다. 문화산책 칼럼 제의를 받으면서 스스로의 직함을 정하는 것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본인을 작가라고 소개하기에 아직 경험치가 충분하지 않기에 작가라는 호칭이 낯간지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앞으로 경험해야 할 것이 많은 청년 작가로서 필자가 가진 고민과 이야기를 글로 이어가려 한다.
우리가 흔히 전시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은 이미 평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설치, 회화, 미디어, 퍼포먼스 등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형태이든 우리는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예술의 개념과 형식 사이에서 그 혼잡성이 자주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미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저 감상하기 나름이다'라고 말하기엔 난처할 만큼 다양성이 혼재되어 있고 많은 것들이 용인된다. 이러한 시대에 필자가 다루고 있는 매체는 조금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평면 회화이다.
회화의 역사는 이미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풍요와 사냥을 위해 새겨진 동굴 벽화에서부터, 중세 시대 종교적 목적의 상징화, 기록을 위한 역사화와 초상화, 사진의 발달에 이르기까지. 재현과 기록의 역할을 사진이 대체하며 회화는 또 다른 방향성을 가져야 했다. 재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예술가는 감정을 표출하고 스스로 목적성을 가진 그림들을 그리며 비로소 창작자의 면모를 띄게 되었고, 회화는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회화만이 가진 고유성은 무엇일까?
필자는 어떠한 작은 상황과 대상, 장면에서부터 촉발된 생각을 매개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이미지화한다. 캔버스라는 물질 위에 형태를 그리고 색을 입히고 균형과 조화를 맞춰가면서 허구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사진이 재현할 수 없는 남은 여백의 지점을 회화로 메꾸며 그 순간을 그리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 전시의 형태로 관람객과 마주하는 것이 필자에게는 이 행위의 또 다른 목적이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회화의 고유성은 바로 이 여백과 상상의 지점이다.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과 중첩한다.
한 곡의 노래를 통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공연이나 연극의 현장감이 살아있다는 생생함을 느끼게 하며, 혹은 맛있는 저녁 한 끼가 무뎌졌던 감각을 전환하기도 한다. 이처럼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품도 일상 속 작은 사유의 지점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미술도 하나의 취향으로서 우리가 조금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