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흠 전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제일모직에 근무한 부친을 따라 한 살에 대구로 이주해 중학교까지 마쳤다. 박 전 사장은 "15년간 머문 대구는 저의 성장과 성격 형성의 요람"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경 기자
한국의 조선업이 화려하게 비상 중이다.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마스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또 한 번 'K-조선'의 도약이 기대된다. 눈부신 조선업의 성장 뒤에는 하루 24시간을 갈아서 쓰고, 온몸을 불사른 선배 조선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조선, 해양플랜트 분야에 평생을 헌신한 박중흠 전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만났다.
◆해상·육지 아우른 전문가
그는 대표적인 '삼성맨'이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28년간 삼성중공업에서 근무했다. 친환경 선박 개발, 유체역학, 기본설계 전문가로, 재임 중 엑손모빌과 쉘, 스타토일, 쉐브론 등 세계적인 석유회사를 고객으로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바다에서 배를 만들며 한국의 조선산업을 세계 1위로 올려놓은 그는 어느날 갑자기 육지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2013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부임한 그는 본사 집무실 한켠에 야전침대를 놓고 밤새워 일했다. '사람이 우선이고, 인간 관계의 크기만큼 비즈니스가 커진다'는 지론을 펼쳤다. '사람'을 중심에 둔 인화 경영을 펼치던 그는 퇴임할 때 후진을 위해 대표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려 또 한번 주목받았다.
"되돌아보니 행복한 직장생활이었어요. 제가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성을 쌓지 말라'였어요. 이 세상의 보기 좋은 성들도 전부 함락되고 주인이 바뀌곤 합니다. 성을 쌓는 것 대신에 도로를 놓는 것, 열린 마음으로 여러 사람과 협업해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제가 일평생 추구한 길이었지요."
중국, 조선산업 막강한 경쟁상대
기술 집약 특수선박에 주력해야
◆기술 중심 특수선 주목
한국 조선업은 최근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정부까지 나서 공개 러브콜을 보내고, 세계 각국에서 수주 물량을 쏟아내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조선업의 현재는 어떠할까.
"조선업은 약 7년간 침체의 터널을 빠져 나와 이제 햇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저 멀리 또 터널이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모든 산업과 기업은 부침이 있습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약 3% 정도이니 세계 물류량도 3% 증가한다고 보면 됩니다. 즉 선박 발주량도 평균 3% 이상 늘어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일본 등 경쟁국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 것은 위협요건이 된다. 특히 후발 주자였던 중국은 야금야금 한국의 시장을 갉아먹더니 이제는 막강한 경쟁 상대가 됐다. 박 전 사장은 안팎으로 처한 위협에서 벗어나 한국 조선업이 나아가기 위해선 '기술 중심의 특수선'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원가의 30%를 차지하는 인건비에서 한국은 중국보다 임금 단가가 약 2배라고 보면 15% 경쟁력이 떨어지겠지요. 그렇다고 임금을 절반으로 깎을 수 없잖아요? 더 주면 더 주었지. 여기서 핵심은 나왔지요.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기술 중심의 특수선,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못하는 분야, 무인 조선소 등에 눈을 돌려야죠."
◆'좋은인재 발굴' 확고한 신념
그는 좋은 인재가 나라를 살리고, 조직을 키운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재임 당시에도 인재를 키우고, 발탁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불현듯 탁자 위에 사진 2장을 내놓았다. 하나는 낮에 찍은 회사 사진, 또 하나는 밤에 찍은 회사 사진이었다.
"밤에 찍은 사진의 회사는 3천억원 짜리에요. 직원들 퇴근하고 건물뿐이니까요. 반면 낮에 찍은 사진의 회사는 10조원 매출에 1조원의 이익이 나고 시가총액은 5조원짜리 회사입니다. 직원들이 가치를 창출하니까요. 이런데도 우수한 직원을 안뽑고 육성을 안할건가요?"
그는 다시 한 번 기업 임원이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인재발굴'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때 세계 최고였지만 지금은 위상이 추락한 일본 조선업의 사례를 제시했다.
"사실 일본은 젊은 기술자를 채용하지도, 키우지도 않았어요. 도쿄대 조선학과도 명칭에서 '조선'을 빼버렸죠. 회사일 시키려고 신입사원 뽑나요? 그렇지 않아요. 신입사원을 뽑는 이유는 회사를 영구히 성장시키기 위해 뽑는 겁니다. 뭐가 다르냐고요? 세대가 연속되어야 기술도 연속되고 발전됩니다. 회사 어렵다고 신입사원 안뽑는 회사는 미래를 포기한 회사입니다."
◆"대구경북, 제 성장의 요람"
그는 제일모직에 근무한 부친을 따라 1살 때 대구로 이주했다. 1970년 경북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주소를 옮겼다. 지금도 대구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정기적 만남을 가지는 등 그 시절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를 떠난지 55년이 지났어요. 아직도 말투가 그대로인 것을 보면 대구에서는 컸고, 서울과 거제에서는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15년간 머문 대구는 저의 성장과 성격 형성의 요람이었던 것이죠."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인재와 자본이 서울로 쏠리는 '수도권 과밀화'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천명했지만 '서울공화국'의 아성을 깨트리기는 쉽지 않다. 그는 수도권에 맞서 대구가 다시 도약하기 위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회사만 인재가 중요할까요? 국가, 지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대덕연구단지를 만들고, 그 가운데 떡하니 9홀 골프장을 만들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인재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죠. 그 때 배출된 인재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구요.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육성하면 인재들도 돌아오고, 인구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제2의 박중흠'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저희 때는 IT, BT, AI 라는 것이 꿈속에도 없었습니다. 몇 십년 후의 유망 분야를 맞출 확률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피지컬 AI가 눈앞에 있는 지금 십년 후의 유망분야를 정하는 것은 맞출 확률이 거의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진리는 잠재하고 있는 능력, 즉 가능성만 있으면 어느 분야, 어느 회사, 어느 조직을 가더라도 자기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죠."
그는 최근 관심을 두고 실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저의 경험을 얘기해주면서 많은 대화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멘토링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대구경북의 청년들과도 더 많은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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