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 평광사과단지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 김현목기자
흔히 대구를 대표하는 작물은 사과라고 인식한다. 한때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난 사과 산지로 평가받으며 '주산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재배 면적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최근엔 기후 변화 탓에 사과 재배 가능 지역이 대구 이외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그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대구 사과의 명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 평광마을, 사과단지로 대구의 자존심 지켜
대구 동구 평광마을에 심어진 다축재배식 사과 나무. 김현목기자
지난 8일 취재진은 대구 동구 평광사과단지 마을을 직접 찾았다. 수확기를 지나 겨울로 접어든 사과나무 대부분은 잎을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설 대목을 한 달여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평광 사과 마을은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겨울철에는 주로 가지치기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 휴식기도 이달(1월) 중순쯤이면 마무리된다.
이날 과수원에 들어서자 다소 특이한 형태의 사과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평광 마을 사과 재배 농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예전에는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진 '트리형 사과나무'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최근엔 키가 위로 곧게 뻗은 나무 형태가 늘고 있다. 사과 재배농들은 이 같은 방식을 '다축 재배'라고 불렀다. '미래식 농사'라고 부르는 재배농도 있었다.
기존 '방추형(원뿔 모양) 사과나무'는 가지가 너무 크게 자라서 내부에 그늘이 적잖이 생겼다.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위로 곧게 뻗은 나무는 햇빛이 골고루 들어 색과 당도가 양호한 사과를 생산하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수확량보다 '상품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배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과 수확은 늦어도 11월에 모두 마무리되지만 판매는 겨울을 지나 설 대목까지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유통 방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터넷 주문을 통한 직거래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대구 도심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소매·직거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요즘엔 수도권과 호남지역까지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 8일 대구 동구 평광마을에서 사과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 김현목기자
이 같은 변화 속에 대규모 과수원은 줄고, 소규모 텃밭형 농가는 늘고 있다. 능금농협 조합원 기준 면적인 4천958㎡를 채우지 못해 조합을 탈퇴한 농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기후 변화는 사과 품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때 대구 사과의 대명사로 불리며 재배품종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부사'의 비중은 2024년 말 기준으로 10% 수준까지 줄었다. 대신 쓰가루·시나노골드(황금 사과) 품종이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이는 전국적 상황과도 비슷하다. 농촌경제연구원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사과의 주류였던 부사는 1990년대에 전체 사과 재배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2024년말 기준으로 62%까지 줄었다. 기후 변화 탓에 부사 재배 적지가 북상하면서 작황이 불안정해졌고, 노동력의 고령화로 손이 많이 가는 부사 재배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재배 방식과 유통 구조 변화로 농가 소득은 일정 부분 개선됐지만, 고령화라는 현실적인 고민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광 사과마을 단지 내 종사자 중 50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70대를 넘긴 고령자들이다.
사과 재배농인 최팔범(75)씨는 "이곳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사과 재배에 유리한 편이다. 서리 피해만 없다면 최고 품질의 사과를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스마트팜 등 새로운 농법을 시도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 고령화 대비해 변화하는 재배 방식
대구 동구 평광마을에서 생산된 사과. 김현목기자
대구에서는 1910년대부터 금호강의 지류인 를 중심으로 사과 과수농가가 분포했다. 대표적인 재배 지역은 도동·불로동·평광동 등이다. 금호강 주변의 '사질 토양(모래땅)'이 사과 재배에는 최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활성화됐다. 1960~1970년대에는 대구가 전국 사과 수확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는 평광동 사과마을이 사실상 유일한 재배지로 남았다. 이곳에는 102㏊ 규모의 과원에서 120가구가 사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는 연간 1천320t의 사과(출처: 대구시농업기술센터)가 생산되고 있다.
대구시농업기술센터는 지난해부터 사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과 다축재배 신규 과원 조성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재배농 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사과 다축재배는 하나의 대목에 원줄기를 2개(2축) 이상으로 유인해 키우는 방식이다. 나무의 세력을 여러 축으로 분산시키고, 가지를 짧게 관리해 전체 수형을 2차원 평면 형태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전정(곁가지를 자르고 다듬는 일)과 적과(많이 달린 과실 솎아내기), 수확 작업이 한결 수월해져 노동력을 20~3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사업은 묘목 식재와 지주 설치를 통해 '기계화·노동력 절감형 첨단 과원' 조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1개소를 시범 조성했고, 올해는 2개소를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농업기술센터는 신규 과원 조성을 희망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다축재배에 적합한 묘목과 전용 지주 시스템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로봇 수확과 기계 전정이 가능한 '과일벽' 형태의 과원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수진 대구시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평광동 사과마을이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도심 근교 농업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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