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영화평론가
그동안 영화에서 '죽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온 방식은 문화적 전통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는 대개 죽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사신'이 등장한다. 즉, 사신이 인간에게 찾아와서 그의 영혼을 데려가면 죽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례로 작년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K팝 데몬헌터스'에는 한국의 전통문학에서 전래되는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인간의 목숨을 가져가는 저승사자가 '사자 보이스'라는 아이돌로 분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설정이 기발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한국에서 도합 2천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신과 함께'(감독 정용화) 시리즈에도 사신들과 염라대왕이 등장했는데, 우리에게는 꽤 친숙한 인물들이다. 세계영화사에서는 '제7의 봉인'(감독 잉마르 베리만)에 등장하는 사신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창백한 얼굴을 한 이 '죽음'은 서구 문화권에서 익숙한 이미지로, 미지의 공포를 대변한다.
그런데 며칠 전, 아주 독특한 사신을 앞세운 영화가 개봉했다. '튜즈데이'(감독 다이나 O. 푸시치)의 사신은 앵무새다. 눈동자에 우주가 담겨있는 그는 '앤트맨'처럼 눈곱만 해지기도 하고, 거대해지기도 하면서 인간들 앞에 나타나 숨을 거두어간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앵무새는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느라 털이 다 빠져버린, 늙고 병든 사신이다. 게다가 그의 귓가에는 늘 사고와 병마로 고통받고 죽음을 부르는 사람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맴돈다. 말하자면 이 앵무새는 인간들의 죽음을 관장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고통에서는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저주 받은 불사신(不死身)이다. 사신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뒤흔들어놓는 이 흥미로운 설정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일까'라는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된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 '튜즈데이'(롤라 페티크루)는 간호사와 함께 오후를 보내다가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앵무새는 튜즈데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녀 앞에 나타나 영혼을 거두기 위해 한 쪽 날개를 들어 올린다. 그러나 이 꼬질꼬질한 사신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든 튜즈데이는 썰렁한 유머를 늘어놓고, 그 침착하고 다정한 모습에 앵무새는 임무를 잠시 유예한 채 그녀의 방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는 동안 앵무새와 튜즈데이는 모종의 우정을 쌓게 되고, 앵무새는 튜즈데이와 엄마가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허락해준다. 그러나 엄마는 앵무새가 사신임을 감지하자 그를 없애버리려 한다.
딸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는 지금까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느라 오히려 딸과는 소통하지 않은 채 삶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사신을 사라지게 하면 딸을 살릴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신앙일 뿐이다. 영화는 튜즈데이처럼 죽음을 직시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만이 죽음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제목인 '튜즈데이'(화요일)는 소녀의 이름이면서 7개의 요일 중 불특정한 하나를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날, 비어 있기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날, 거기에는 물론 죽음도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엄마에 더 초점을 맞춘다. 죽음은 망자(亡者)들에게만이 아니라 가족과 연인, 친구와 동료들에게 더 분명하게 닥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앵무새가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고 찾아가는 신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종교와 관계 없이, 이 세상에서 사후세계란 남겨진 사람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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