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카파도키아 붉은 산

  • 이연주 시각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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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20 06:00  |  발행일 2026-01-20
이연주 시각예술가

이연주 시각예술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절경을 내려다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다. 화면 속 뒷모습을 따라 보는 이들 또한 그와 함께 풍경을 내려다보게 된다. 이 그림은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이다. 이 외에도 그의 그림에는 풍경과 인물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모습으로 그려진 인물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숭고함과 그 앞에 서 있는 이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한 튀르키예는 한국보다 약 8배 정도 넓은 면적을 가졌다. 넓은 지형적 조건으로 지역마다 다양한 기후와 그에 따른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 중 튀르키예 중부 아나톨리아에 자리한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해발 1천m 이상의 고원지대로, 화산 활동과 침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기암괴석과 석굴, 지하 동굴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지역이다. 대학 시절 언니와 떠난 튀르키예 여행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과 기괴한 모양의 바위산은 필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펼쳐진 새로운 풍경 앞에서 필자는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함에 눈이 번쩍 띄었다.


카파도키아의 바위산은 하늘과 가까이서 끝없이 낮게 펼쳐졌다. 필자의 시선은 자연스레 산에서 하늘로 이어졌고, 카파도키아의 산과 하늘을 함께 그려내고 싶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필자는 눈에 아른거리는 카파도키아 풍경을 떠올리며 2016년 '붉은 산' 연작을 그렸다. 한국의 푸른 산 연작은 나무로 빽빽하게 겹쳐진 덩어리 감을 표현하기 위해 면을 중첩해 화면을 가득 채웠다면, 카파도키아의 붉은 산 연작은 화면 하단에 바위산을 낮게 깔고 드넓은 하늘로 화면을 비워내는 과정이었다. 언제든 바라볼 수 있는 한국의 산을 그리는 것과 기억 속에 각인된 카파도키아의 산을 그려내는 것은 필자에게 또 다른 방식의 작업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행에서의 기억은 점점 흐려졌고, '억지로 이 작업을 이어갈 수는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의 튀르키예 풍경은 그렇게 필자의 그림 속에 선명하게 남겨두었다. 익숙한 풍경 안에서도 처음 마주한 낯선 풍경 앞에서도 필자는 그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거대한 풍경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작은 걸음으로 아직 마주해보지 않은 길이 한참이라는 생각도 함께 뒤따른다. 뜻밖의 낯선 풍경이 2016년 필자의 캔버스를 가득 채워주었던 것처럼, 2026년 새롭게 마주할 풍경으로 앞으로의 캔버스를 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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