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대구파티마병원 신경과 과장
최근 정부의 의료 정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의사 증원'이다. 의료 인력 부족을 대한민국 의료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규정하고,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해법인 양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이와 다르다. 지금의 위기는 의사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환자를 실제로 치료하는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의사의 '수'에는 집요할 만큼 관심을 보이면서도,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문제에는 좀처럼 답하지 않고 있다.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 외과·외상·중증 수술 분야에서 인력 공백이 발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치료를 계속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중증 환자를 맡을수록 위험과 책임은 커지고, 근무 강도와 시간 부담은 극심해지지만, 보상은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수의료일수록 수가는 낮고 적자는 구조화돼 있다. 생명을 살리는 행위, 밤샘 당직과 고위험 수술은 의료의 본질임에도, 현행 수가 체계에서는 비용과 부담으로만 취급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수십 년째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가 개편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숫자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인력만 늘리는 방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다. 치료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어떤 해법이 될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치료할 의사가 줄어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과도한 법적 책임 구조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한 영역임에도, 현재의 제도는 결과가 나쁘면 곧바로 형사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최선을 다한 진료 과정과 불가피한 의료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는 법적 환경 속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상시적인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누가 위험이 크고 부담이 큰 분야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치료할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새로 배출되는 의사들 역시 동일한 저수가 구조와 법적 위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 굳이 필수의료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인력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분야와 수도권으로 쏠리고, 필수의료의 공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해서 확인된 현실이다.
정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질문의 출발점이다. "의사가 몇 명 부족한가"가 아니라, "왜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하는가"를 먼저 물었어야 한다. 치료할 의사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는 필수의료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의료사고에 대한 합리적인 책임 구조, 그리고 현장을 버틸 수 있는 근무 환경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늘 정책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의료는 숫자로 유지되지 않는다.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의료 시스템은 작동한다. 의사 증원에만 몰두하고, 치료할 의사가 사라지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늘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치료하는 의사를 존중하고 보호하겠다는 분명한 정책적 전환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의료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선택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