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닮은 풍경

  • 이연주 시각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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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3 06:00  |  발행일 2026-02-03
이연주 시각예술가

이연주 시각예술가

필자는 산을 소재로 작업을 이어오던 중, 문득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과연 산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목적이 실재하는 산의 재현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업을 통해 내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이제껏 '산'을 작업의 주된 조형 언어로 활용하면서 산을 바라보았던 나의 시선과 태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필자에게 산은 일상을 둘러싼 풍경임과 동시에 매일 마주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대상이었다. 산을 바라보며 느낀 익숙함과 편안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을 모색하며, 산 이외에 시선이 머무르는 곳들을 찾아 드로잉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드로잉(Drawing)'이란 선을 중심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이를 빠르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즉각적인 표현과 관찰, 본능적인 획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드로잉은 주로 본 작업을 들어가기 이전 에스키스나 구상 단계의 연습, 혹은 스케치나 밑그림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드로잉은 본 작업과 다르게 좀 더 유연한 사고의 확장을 돕는다. 한동안 필자는 휴대할 수 있는 작은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눈에 담고 싶은 장면들을 그렸다. 팔짱을 낀 채 잠든 아버지의 뒷모습, 잠들기 전 마주하는 어머니의 작고 둥근 등, 책상 앞에 앉은 언니의 모습, 거실 바닥에 엎드려 누운 남동생, 그리고 연인과 반려묘의 모습까지. 빼곡하게 쌓인 드로잉 속에 반복적으로 남은 것들은 필자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일상이었다. 하루를 가득 채운 그 모습들은 익숙한 또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변함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산과 사람은 맞닿았고, 더불어 형태적으로도 유사한 지점이 있었다. 뒷모습에서 발견한 삼각형에 가까운 등허리의 형태, 굽은 어깨와 포개어진 덩어리는 필자에게 산등성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인물의 외형이나 특징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도록, 인물의 앞모습이 아닌 한걸음 뒤에서 바라본 그들의 뒷모습을 산과 닮은 풍경처럼 표현하였다.


드로잉에 남은 시선들은 산과 인물이 중첩된 '닮은 풍경' 연작으로 이어졌다. 이 작업은 일상의 풍경이 산처럼 오래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지나치는 찰나 속에서, 필자는 반복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익숙함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 그린다. 필자의 풍경들이 누군가에게도 '닮은 풍경'으로 남을 수 있기를, 필자의 시선이 또 다른 이들의 일상 속 익숙함과 중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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