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의 작은 산

  • 이연주 시각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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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10 18:00  |  수정 2026-02-09 14:15  |  발행일 2026-02-10
이연주 시각예술가

이연주 시각예술가

계단을 올라 파란 철문을 열고 3층 옥탑방으로 향한다. 어떤 날은 창문 앞에 앉아 바깥을 구경했고, 철컥하는 열쇠 소리에 잠에서 깨어 졸린 눈을 끔뻑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또 작은 몸을 둥글게 말고 새근새근 단잠에 빠져 있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루도 빠짐없이 쪼르르 달려 나와 나를 맞이해주었다. 내가 바닥에 앉자마자 무릎 위로 자석처럼 올라와서는, 야무지게 자리를 잡고 이마를 긁어달라는 듯 고개를 내밀거나 꼬리를 살랑거렸다.


나의 반려묘 '반짝이'는 노란 치즈 고양이였다. 길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를 나의 연인이 데려왔고, 이내 둘이서 함께 키우게 되었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나에게 작은 고양이와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하였다.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말이 오갔지만, 같은 언어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고양이와의 대화에는 조금 더 세심한 눈맞춤이 필요했다. 왜 밥을 안 먹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더 가까이서 바라보고 살펴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그래진 눈은 우리를 따라 움직였고, 쫑긋해진 큰 귀로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고, 자꾸 옆에 붙는 우리가 귀찮은지 꼬리를 찰싹거리기도 했다. 쓰다듬는 손길에 기분 좋은 듯 두 눈을 꼭 감고, 따뜻한 곳을 찾아 품을 오므렸다. 그렇게 나는 반짝이에게서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고양이를 이토록 많이 그리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일상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나의 그림 속에 작은 산처럼 자리 잡았다. 앞발을 오므려 웅크린 모양도, 동그란 뒷모습도, 길게 늘어져 나의 연인과 함께 꼭 붙어 잠든 모습도 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몇 해 전, 반짝이를 떠나보낸 뒤 언제나 반복될 것만 같았던 일상이 멈추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은 산과 대상을 겹쳐 그리는 일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산을 닮은 모습이 아닌, 언제든 내 곁에서 머물다 떠나갈 수 있는 존재로서 대상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이 달라짐에 따라 그림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나는 반짝이를 나무에 빗대어, 나무 기둥 옆에 기대어 있거나 나무를 둘러 안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산을 이루는 수많은 나무 중 한 그루에 시선을 두고, 그 옆에 머무르는 작은 모습의 인물을 표현하였다.


대상의 부재를 받아들이기까지 나에게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동안 나의 작업은 부재한 대상을 애도하는 과정이었다. 애도의 한 방식으로서 그림이 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기를, 나 역시 이 시간을 지나면서 상실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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