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잠 못 드는 밤의 고백

  • 장수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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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09 06:00  |  발행일 2026-02-09
장수영 수필가

장수영 수필가

부스럭 밤을 깨운다. 이미 창은 희붐해지며 어둠을 걷어내는 중이다. 사그락거리며 이불자락을 발끝으로 밀어내고 거실로 나왔다. 동굴 같은 어둠에 조심스레 발을 떼어놓지만, 기어이 벽에 기댄 빨래걸이를 걷어찼다. 부엌에서 물 한 컵을 마시고 나니 금세 화장실을 또 간다. 불면의 밤에는 그리도 버릴 것도 많은지. 생리현상마저 눈치 없이 덩달아 밤을 새운다.


오후에 커피를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카페인 해독을 잘하지 못한다. 카페인 때문에 오후에는 커피든 차든 마시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 분위기에 취해 유혹에 넘어가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낭패를 보고 만다. 쌉싸름한 커피 향에 마른 입술 위로 혓바닥을 굴리기도 하지만, 이내 생각은 잠 못 드는 밤의 근심으로 간다.


커피를 즐겨 마시던 때도 있었다. 아이들 또래 학부모들과 자주 어울릴 때였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난 뒤 꿀맛 같은 잠깐의 여유를 찾아 아래층 이웃집에 들르곤 했다. 너무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게 타낸 커피에 곁들인 비스킷은 커피 맛을 한껏 빛내주었다. 그때는 잠이 모자라서 탈이었다.


오래전, 아침 공복에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가 부엌 바닥에 그대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밤새 찻주전자에 담겨 있던 찻잎에서 카페인이 진하게 우러난 것이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영문도 몰랐다. 따뜻한 꿀물 한 컵을 마시고 나서야 요동치던 위 속이 겨우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차나 커피를 가벼운 음료 마시듯 쉽게 생각하지만, 카페인으로 인해 수면을 빼앗겨 본 사람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체질상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사회생활에 고충을 겪는다면,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워본 사람이면 안다. 카페인에 약해서 커피를 거절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불면의 밤이 하루를 얼마나 갉아내는지.


언제부터 커피가 인기 있는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을까. 모임 후 2차 문화가 술에서 카페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식사 후 커피는 입가심이라지만,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된 듯하다. 마시고 나면 입안이 깔끔해서 좋다며 다들 카페로 간다.


요즈음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잠 못 드는 날이 종종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오디오북의 소설 한 편을 들으며 잠을 청해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으면 편하게 잠을 잤으리라.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오늘도 창밖의 희붐한 아침을 맞으며, 매일 깊고 고요한 잠에 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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