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대법원 대구 이전,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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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10 06:00  |  발행일 2026-02-10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국토균형발전과 지방 활성화는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국가적 과제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조성, 행정수도 이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 현상과 서울 집값 폭등은 여전하다.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권력의 핵심 기관이 여전히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징적이며 구조적인 변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과 정당에서 논의하는 대법원의 지방 이전, 특히 대구 이전 논의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대법원은 단순한 국가기관이 아니라, 사법 질서의 최종 판단 기관이자 법치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대법원 지방 이전의 파급력은 일반 공공기관과 비교할 수 없다. 대법원 이전은 '지방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넘어, 국가 운영의 중심축을 실제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논리가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스위스의 연방대법원은 수도 베른이 아닌 로잔에 위치해 있다. 이는 연방주의와 지역 균형을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다. 정치·행정 중심지와 사법 최고기관을 분리하여 배치함으로써 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독일 역시 단일 '대법원' 대신 몇 개의 기능별 최고법원으로 나누어, 대부분 수도 베를린이 아니라 카를스루에, 라이프치히, 뮌헨 등 지방 도시에 배치하였다. 이런 사례는 역사적 전통을 기반으로 권력 분산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결과다. 더 나아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행정부는 프리토리아, 입법부는 케이프타운, 사법부는 블룸폰테인에 배치해, 국가 권력을 완벽하게 공간적으로 분산시켰다.


최고 사법기관이 수도가 아닌 도시에 위치한다고 해서 사법 기능이 약화되었다는 결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권력 분산과 지역 균형이라는 국가 운영 원칙이 실현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이 반드시 수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약하다.


사법 접근성이나 행정 효율성 역시 과거지향적 논리이다. 대법원은 사실심 법원이 아닌 법률심 법원이므로, 전자소송과 기록심리가 중심이 된 오늘날에는 물리적 거리 역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국민 대다수는 하급심에서 재판을 마치고, 대법원은 법률적 통일성과 헌법 질서를 정리하는 역할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구는 전통적으로 탄탄한 법조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고등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 체계가 오랫동안 운영되어 왔고, 영남권 전체를 아우르는 지리적 접근성도 뛰어나다. 그러므로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법조 인력과 법률 서비스가 대구를 거점으로 분산된다면, 지방 법률 시장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권력기관인 대법원의 대구 이전은 지방 활성화의 촉매가 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역 경제와 도시 기능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 국가 최고 사법기관이 지방에 자리 잡는 순간, '지방은 변방'이 아니라, 이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평등한 공간이 될 수 있다.


대구의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하나로 뭉쳐서 지금 논의되는 대법원 이전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국토균형발전은 이제 더 미룰 수 없으며, 행정기관 이전과 더불어 대법원의 재배치를 통해 제대로 완성해야 한다. 대법원의 대구 이전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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