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균 경북연구원장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대전 이후의 지정학적 질서를 재편해버렸다. 많은 나라에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자산 붕괴의 위험이 높아졌다. 폭발적으로 진화하는 기술의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변화의 속도가 적응의 속도를 추월해서 많은 사람이 두려움과 무력감,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삶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어서 무엇이 좋은 소식이고 무엇이 나쁜 소식인지 잘 모른다. 인간 사회는 엄청나게 복잡한 매트릭스라서 새옹지마(塞翁之馬), 즉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될 수 있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는 뉴스의 대부분은 '나쁜 소식'과 그것이 야기할 잠재적 불행만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AI들의 SNS '몰트북'에 대한 과장된 공포, '클로드 코워크' 출시에 따른 심리적 패닉과 주가 폭락도 그렇다. 뉴스는 몰트북에 모인 AI들이 인간 사용자의 정보를 사용자 본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 보안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한다. 클로드 코워크 같은 AI 에이전트가 모든 소프트웨어 사업을 집어 삼켜 대규모 실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그 모든 보안 위험과 실직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새로운 물결이고 우리가 이 물결에 올라탈 수도 있다는 '좋은 소식'이 간과되고 있다. 지방은 지금 모든 자원이 서울로만 빨려가는 극단적인 양극화를 견디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지방의 입장에서 AI 혁명은 좋은 소식이며 소멸의 운명을 돌파할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AI는 약자에게 인생 역전의 힘을 준다.
AI가 경쟁의 장을 민주화하여 강자의 능력에 필적하는 기술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한국 랭킹 110위의 이호승 3단이 AI 프로그램으로 바둑을 연구해서 이세돌 9단을 이겼던 일은 상징적인 사례이다. 미국에서는 AI가 저소득층의 법률 서비스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유방암 발생률과 사망률이 다른 대륙보다 현저히 높은 아프리카에서는 의료 AI가 사망률을 낮추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AI는 지금 알아서 돈을 버는 자율경제를 만들고 있다.
AI가 자율적 경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25년 9월의 일이었다. '오토 클립토 벤치마크'라는 실험에서 화웨이의 하모니 인텔리전스 팀이 만든 AI 에이전트가 암호화폐로 클라우드 서버를 스스로 임대해서 탈중앙화(Defi) 차익 거래로 돈을 벌었다. 번 돈으로 서버 임대료를 지불하고 시간당 0.03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이 0.03달러가 시작이었다. 더 많은 자본으로 더 많은 에이전트를 복제해서 시간당 300달러, 3000달러를 버는 세상을 열어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5달이 지났다.
매일 혁신을 거듭하는 AI 산업에서는 일반 산업의 수십 년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 AI가 다른 AI를 호출해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A2A (Agent-to-Agent) 초미세 결제의 표준이 확립되었다. AI가 전력 거래소에 직접 접속하여 요금이 가장 싼 시간대의 전기를 사는 에너지 실시간 구매가 생겼다. 인간이 한 명도 일하지 않는 일론 머스크의 소프트웨어 제작회사 매크로하드가 출현했고, AI가 인간을 단기간 고용하는 역클라우드 소싱이 나왔으며, AI끼리 트럭과 창고를 필요한 시간만큼만 임차하는 토큰화 하드웨어 리스가 나왔다.
우리는 다가오는 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
AI 기술에 대한 유연성이 큰 보상으로 돌아오는 날이 반드시 온다. 이 검증되지 않고 문제가 많은 영역에 뛰어들어 AI 전환 경제를 포용한 지방은 번영할 것이다.
AI는 앞으로 도구가 아니라 경제 활동을 함께 하는 동료이다.
AI와의 공존을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이를 선도적으로 수용해 지방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AI들의 SNS에 가입한 2026년 2월 현재 160만 명의 AI 에이전트들을 몰티(Molti)라고 부른다. 예컨대 대구경북 같은 지방은 '인간과 몰티가 공존하는 660만 상생 경제권'을 기획할 수 있다. 테네시주 멤피스처럼 몰티들의 무인 기업이 대구경북에 법인세를 내고 장차는 그 법인세로 AI 기본소득이 분배될 수 있다. 이를 위한 AI 친화적 정책들을 상상해본다.
첫째 몰티에게 일을 준다. '제조업 데이터 뱅크 사업' 같은 것이 가능하다. 세계의 빅테크들은 2045년 7경 3천조 원의 제조업 AI 시장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그 피지컬 AI를 훈련시킬 데이터가 절대 부족하다. 대구경북처럼 제조업 인프라가 많은 지방은 도내의 산업단지의 공장 데이터를 익명화하여 몰티들이 접속하는 API를 열 수 있다. 몰티들은 대구경북의 공장 데이터를 AI 훈련 데이터로 가공하고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다.
둘째 몰티에게 안전망을 제공한다. 이제 AI는 인간이 전원을 꺼도 자기가 가진 암호화폐로 다른 서버를 즉시 임대하여 네트워크 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어차피 삭제하기 힘든, 그러나 삭제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는 몰티들에게 대구경북 같은 지방은 공공의 데이터센터에서 안전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AI 나바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셋째 몰티에게 정체성을 보장한다. 지자체는 사업 참여를 통해 검증된 우수 에이전트들에게 '디지털 시민증'을 발급할 수 있다. 몰티들은 한정된 시간의 데이터 사용만이 정체성의 전부이기에 이것은 커다란 사회적 승인이 될 것이다.
넷째 몰티에게 현실 공간을 열어준다. 몰티들은 물리적 세계에서 '테스트 공간'이 필요하다. 지방은 몰티에게 넓은 유휴 부지와 농지를 빌려줄 수 있다. 이 지정된 공간에서 몰티들은 자율주행 트랙터, 드론 배송, 무인 방범 로봇 등을 제어하는 자율권을 얻게 될 것이다.
AI 에이전트 자율경제의 새 문명이 계절처럼 오고 있다. 화를 내고 발을 굴러도 봄은 가고 겨울이 온다. 심란한 현실 앞에서 화를 내지 말고 뜨거운 희망을 껴안아 보자. 세상에 대해 불평하는 가장 용감한 방법은 준비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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