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추리 본드(Century Bond)'는 말 그대로 100년 뒤에 돈을 갚겠다는 채권이다. 이걸 누가 살까 싶지만, 의외로 찾는 투자자가 꽤 있다. 최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영국에서 센추리 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그것도 모집액(10억 파운드)의 10배 가까운 자금이 몰리는 대흥행을 거두면서다. 부침이 심한 IT기업이 100년 채권을 발행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IT기업으론 지난 1997년 모토로라의 센추리 본드 이후 처음이다.
기업의 센추리 본드는 장기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00년 이상 갈 기업'이라는 자신감의 발로이고, 시장에서 이를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AI 인프라에 대한 과잉 투자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알파벳의 승부수가 먹힌 것은 그만큼 시장의 신뢰가 확고하다는 방증이다. 알파벳이 현금 창출력, AI 성장성 등 완벽한 '해자(垓子)를 갖춘 기업'임을 과시한 셈이다. 앞서 센추리 본드를 발행한 기업을 보면 코카콜라, 프랑스 전력공사 등 초우량 기업이거나 공공기관들이다. 시장 수요도 적지 않다. 연기금, 보험사 입장에선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장기 고정이자를 받거나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어서다. 만기가 길다보니 리스크 또한 크다. 지난 1997년에 발행됐던 미국 백화점 'JC Penney'의 센추리 본드 투자자는 2020년 이 회사 파산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
한국에서 센추리 본드는 낯설다. 국채도 50년물 발행에 만족할 정도다. 자본시장 성숙도, 기업의 해자 구축이 미흡하다는 인식 탓이다. 머지않아 '100년 뒤에 갚을 것'이라며 당당하게 센추리 본드를 발행할 기업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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