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의 민초통신] 지방 소멸, 고향 소멸, 인구 소멸

  •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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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03 06:00  |  발행일 2026-03-03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소멸' 단어를 들으면 박두진 시인이 생각난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시인은 '마을 소멸, 사람 소멸'의 풍경과 공포를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그린 시를 발표했다. 피난민들로 북적이던 대구에서 펴낸 시집 '오도(午禱)'에 실은 '벗에게'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 마을마다, 옹기종기, 떠들썩하고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하나도 없이 다 어디로 가버리고…// 그 볼이 고운 소녀 하나, 벙글대는 아가 하나 만나볼 수 없고, 서로 따뜻이 만나면 잡고 흔들 손길 하나 없어…// 짐승들, 새들, 적은 벌레들마저 간 곳 없고, 도회와 촌락과 온갖 지상의 것이, 다 형해도 없이 재만 남은 곳에, 요행히 홀로 그대만 남아서 있다면, 그대는 어쩌겠는가.//…'


# '사라짐' 속 '홀로 남음'의 공포


물론 이 시는 요즘 말 많은 '지방 소멸'과는 관계가 없다. 한때 활기찼던 마을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소녀도 아가도 찾아볼 수 없게 된 시골의 공포, 그 이미지만 닮았을 뿐이다. 사실, '벗에게'는 종교시다. 모두가 사라져 홀로돼도, 신과 함께면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추스르는 시란 얘기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모든 사라짐' 속 '홀로 남음'의 공포가 더 이상 없을 세상을 신께 간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를 발표한 당시 상황을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 전쟁 중 곤두박질쳤던 나라의 합계출산율은 휴전 후 원상을 회복했다. 가임여성 1명이 평균 6명 아기를 낳았다. 소녀들, 아가들, 귀향 군인 등 '따뜻한 손길'들이 마을에 다시 모였다. 옹기종기 북적이며 가난하지만 떠들썩한 새 삶이 시작됐다. 전쟁이 불러왔던 마을과 사람, 삶의 소멸에 대한 공포도 차츰 스러지는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발전과 산업화 거기다 산아제한까지, 잰 발걸음들이 새로운 소멸을 불러왔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이 함께 찾아온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농가 인구가 198만2천 명으로 줄었고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56%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통계작성 후 처음 농림어업 인구가 200만 이하로 떨어졌으며 고령화율 탓에 감소 추세는 더 가팔라진다는 설명이었다.


이 얘기를 다른 통계와 맞물려보면 지방의 인구 소멸 느낌은 더욱 확연해진다. 1960년 우리 농가 인구는 1천425만 명, 국내 총인구의 57%에 달했다. 20년이 지난 1980년에도 농림어업으로 먹고사는 '시골 사람' 수는 1천80만이 넘었다. 그러나 21세기 초입, 2000년에 들어서면서 그 숫자는 400만으로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작년, 예상보다 무려 3년을 앞당겨 200만 명의 벽이 깨지고 만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총인구는 5천110만 명. 농가 인구는 4% 남짓이다. 이를 뺀 도시 인구는 그 절반 이상이 수도권 인구(서울 인천 경기)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이곳에 2천608만 명이 몰려 산다. 2019년부터 수도권 인구수는 비수도권 인구수를 넘어섰다. 한반도의 블랙홀이 돼 정말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다. 이 수도권 공화국이 찌는 살 때문에 시골, 고향은 말라 죽어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 393 지방도로, 어제와 오늘


이번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자.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 40대가 태어난 1980년대 초만 해도 수도권 과밀이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로지 서울로만 몰려들어 일찍이 '서울은 만원'이라는 별명도 얻었으나 그 시계(市界)만 벗어나도 시골 냄새가 물씬 묻어나곤 했다. 1981년 동아일보에 서울과 근교 지역을 대비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한국 기자상을 탔던 기획 기사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기점 23㎞ 지점 아래로 지방도로가 통한다. 성남에서 수원으로 가는 '393번 지방도로'다. …포장된 1차선이지만 군데군데 포장이 패었고 중간에 포장 안 된 길이 꽤 길다. 낡은 시외버스가 덜커덩대며 달린다.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산비탈을 굽이쳐 돌며 달구지나 경운기를 비키기도 한다. 정류장이 따로 없다. 아무 데건 손을 들면 태워주고 또 내려주며 쉬엄쉬엄 천천히 간다.…'


목가풍 향수가 느껴지지 않는가. 달구지가 다니는 도로라니, 지금은 이른바 '깡 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거기에 흙먼지를 풍기는 비포장도로까지… 이 393번 지방도로는 지금은 23번 '국가지원' 지방도로로 승격했다. 천안에서 시작해 서울 가양대교 북단으로 이어지는 최소 왕복 4차선 도로다. 비포장은 어디도 없다.


기자가 탔던 성남~수원 42㎞ 구간은 지금 '헬게이트 도로'(지체·정체가 밥 먹듯이 반복돼)라 불린다. 상습 정체 구역답게 판교 죽전 수지 풍덕천 구간은 빠져나가는 데만 30분이 넘을 때도 많다. 그런데 45년 전 기자는 "42㎞ 전 구간을 쉬엄쉬엄 달려 1시간30분이 걸렸다"고 썼다. 또 "고속도로에선 서울서 대전까지 가는 시간인 만큼, 완속(緩速)"이라고 했다. 그때 그 도로가 지금 보니 오히려 고속이었다는 이 역설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서울보다 더 도시화 된 서울 근교는 거의 정체 구간이 되었다. 산비탈 개울은 빌딩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공원에 가지 않고는 비포장 흙길을 찾기도 어렵다. 편의시설, 상가는 서울보다 많고 크다. '393 지방도' 기사가 나온 10년 후,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에 1기 신도시 30만 호가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과밀부담금 부과 얘기가 나왔으나 실행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 지선 체크 리스트를 만들자


1984년 무렵에는 우리 출산율이 2.1 이하로 내려갔다. 현재 인구의 유지도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때였다. 87년이 되면서는 시골 빈집이 10만 호로 늘어났다. 장기간 비워놔 아예 폐가가 된 집은 셈에서 뺐는데도 그랬다. 아이들이 없어 폐교하거나 분교로 강등하는 학교들도 매년 수백 개씩 늘었다. 이런 인구 소멸 경고음이 계속 이어졌지만 '산아제한' 정책을 정부가 실질적으로 폐지한 것은 90년이 되어서였다. 공식적 폐지 선언은 이보다 6년이 더 늦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제대로 짚고 책임을 물은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데 있다. 수도권 과밀의 원인이 된 정책 하나하나를 짚고, 국가 인구 소멸 위기 경보를 몇 년씩 방치했던 무지도 따지며, 번드르르한 도시 개발을 핑계로 고향의 소멸을 방치한 안일을 눈감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90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체크리스트를 이제 만들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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