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현의 사진 귀 기울이기]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

  •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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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06 06:00  |  발행일 2026-03-06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서울 관악구 낙성대공원·2019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서울 관악구 낙성대공원·2019

모두가 평범한 서민들이다. 그런데 단 하루, 단 몇 분만큼은 판타지 속 주인공이 된다. 10대 소년 소녀부터 80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월남치마도, 반짝이 재킷도, 빨주노초파남보 총천연색 의상도 그곳에서는 전혀 과하지 않다.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 약간은 어설픈 안무가 오히려 매력이 되는 곳,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다. 1980년 첫 방송을 시작한 대한민국 최장수 공개방송 프로그램은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현장이다. 요즘의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통편집 대상이겠지만, 그곳에서는 '딩동댕~' 대신 '땡~'을 받아도 끼 있는 출연자들은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다. 느긋하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빰 빠빰빠 빰 빠~ 전국노래자랑의 멜로디는 한국의 거의 모든 가정을 점령했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고령 MC였던 진행자 송해가 "전국~" 하면 나도 모르게 "노래자랑~"을 따라 외쳤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을까.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충남 세종 호수공원·2016.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충남 세종 호수공원·2016.

사진가 변순철에게도 전국노래자랑은 익숙한 프로그램이다. 다만 비호감에서 극호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린 시절 늦잠을 자면 빨래를 널던 부모님이 늘 틀어놓으셨던 노래자랑은 소리도 시끄럽고, 옷도 촌스럽고, 왜 어른들은 저걸 볼까 싶을 만큼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부모님이 보시던 전국노래자랑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생경하고 날것 같은데, 어릴 때와 달리 너무도 솔직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다양한 세대가 참여해 분출하는 이 에너지가 바로 한국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쳤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생명력 넘치는 삶의 굿판. 변순철은 자신도 모르게 실제로 무릎을 탁 쳤다고 했다. 캄캄한 동굴에서 작업의 입구를 찾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진가 변순철의 '전국노래자랑'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경남 합천 합천군민체육공원·2019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경남 합천 합천군민체육공원·2019

2005년 설 특집이었다. 작가는 KBS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을 설득해 아마추어 출연자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왜 이 사람들은 노래자랑이라는 공간에서 욕망을 분출하려 할까. 평범한 인물 속에 감춰져 있던 특별한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출연자들의 '민낯'을 담기 위해 그는 무대 뒷모습부터 기록했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품은 사연에도 귀를 기울였다. 물론 일등을 목표로 참가한 이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꿈을 대신 품고 무대에 오른 자매도 있었고, 평생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여든이 넘어서야 마이크를 잡은 어르신도 있었다. 그들에게 전국노래자랑은 단순한 방송 출연이 아니라, 짧지만 소박하고 깊은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을 따라 전국을 돌며 3년에 걸쳐 1차 촬영을 마쳤지만 결과는 흡족하지 않았다. '날것'을 찍고 싶었는데 '반듯한 것'이 찍혀버린 것이다. 마호가니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에 담긴 출연자들의 모습은 대부분 프레임 안에 세워 기록한 정형화된 이미지였다. 전국노래자랑의 날것 같은 모습이 시대를 반영하는 온도계라 생각했지만, 출연자들 내면의 특별함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2012년, 그는 다시 전국노래자랑을 찾았다. 이번에는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 대신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서였다. 그리고 출연자들에게 단 한마디만 건넸다.


"마음대로 해보세요."


그 말은 일종의 마법처럼 작용했다. 아직 무대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난장'처럼 자유롭게 찍다 보니 그가 담고 싶었던 진짜 '날것'들이 쏟아졌다. 마치 전국노래자랑 무대가 끝난 뒤 바로 시즌 2가 펼쳐진 것처럼 말이다. 냉장고 바지를 입은 어머니들의 눈빛도, 트로트 가수라 착각할 만큼 당당한 포즈도, 앳된 여학생들의 몸짓도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찰나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전국노래자랑의 거의 모든 현장을 기록한 변순철에게, 출연자들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안에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 전통과 대중문화가 함께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전남 순천 팔마인조구장·2019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전남 순천 팔마인조구장·2019

사진가 변순철을 아는 이들은 왜 이렇게 촌스러운 작업을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한 이들이라면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재밌는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인가 보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호평받은 그의 이전 시리즈 '짝-패'를 본다면 전혀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정말 같은 사진가의 작품이 맞느냐고. '전국노래자랑'이 형형색색 그야말로 다양한 표정의 에너지를 보여준다면, 미국의 다인종 커플을 촬영한 '짝-패'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그것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당시 그의 내면을 반영한 결과였다. 뉴욕에서 유학생으로 살아가던 그는 극도의 고독과 단절을 경험했고, 그 감정은 결국 인물사진으로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2016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경기 안산 안산문화예술의전당·2016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다음 프로젝트를 심각하게 구상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프로젝트 '짝-패'가 국내외 사진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직후였고, 이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찍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전국노래자랑을 만난 것이다. 사진가 변순철에게 사진은 무언가를 꾸미거나 포장해서 보여주는 작업이 아니다. 그는 대상, 혹은 팩트 그 자체를 장식하지도, 우회하지도 않고 직시하는 것이 자신의 카메라이자 사진이라고 말한다. 다인종 커플을 찍은 '짝-패'가 백인 사회에서 유색 인종으로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업이었다면, '전국노래자랑'은 출연자들의 유쾌한 포즈와 표정을 통해 결국 한국, 그리고 한국인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타인을 향했던 변순철의 시선은 결국, 자신이 속한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경기 수원 수원화성 연무대·2016

바람아 불어라, 전국노래자랑·변순철·경기 수원 수원화성 연무대·2016

전국노래자랑은 노래 실력을 가려내는 무대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잠시 자신의 삶을 꺼내 보이는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노래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완벽하지 않은 음정과 서툰 춤, 예상치 못한 촌극까지도 웃음과 공감을 만든다. 전국 각지를 돌며 이어져온 이 무대는 한 시대의 풍경이며, 변순철은 그 풍경 속 소중한 얼굴들을 기록했다. 다시 한번 사진을 보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사회적 위치를 잠시 내려놓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발랄한 에너지로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바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바람아 불어라~ 그 바람은 평범한 이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향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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