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양 외과의사가 바라본 일본 풍경14]벚꽃을 대하는 일본의 자세에서 배우는 사실

  • 임재양외과 원장.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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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26 23:12  |  발행일 2026-03-26
우에노 공원의 벗꽃. 아침 일찍부터 신입생이 자리를 맡고 준비를 하면 직장인들은 동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의식을 가진다.<임 원장 제공>

우에노 공원의 벗꽃. 아침 일찍부터 신입생이 자리를 맡고 준비를 하면 직장인들은 동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의식을 가진다.<임 원장 제공>

일본의 봄은 벚꽃과 함께 찾아온다. 아직 공기가 차가운데도 사람들은 벚꽃 이야기를 나누고, 백화점은 분홍빛으로 물들며 관련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본은 한 달 전부터 남쪽에서 시작되는 '사쿠라 전선(벚꽃 개화 예상선)' 지도를 만들어 방송으로 연일 보도한다. 지역별로 지정된 '표준목'에서 꽃봉오리가 세 개 터지면 개화, 80%가 피면 만개로 발표한다. 도쿄는 야스쿠니 신사 안의 벚꽃 나무가 표준목이다. 며칠 전부터 담당 공무원이 나무를 관찰하며 그 과정을 실시간 중계하고, 시민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꽃을 기다린다.


벚꽃 명소인 메구로 강변, 신주쿠 공원, 우에노 공원은 개화 전부터 분홍빛 장식으로 단장하고, 꽃이 피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4월의 학교 입학과 회사 입사의 축하는 3월 벚꽃이 피면서 시작한다. 신입생이 미리 좋은 자리를 확보하고 준비하는 것은 처음 사회 생활하는 신임이 해야 하는 일이다. 가족, 친구, 동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꽃을 보고 함께 즐기는 것은 전 국민의 축제다.


나는 우리 꽃 '무궁화'에 대한 기억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무궁화는 예쁘지 않고 진딧물이 많으며 지저분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일제가 우리 민족성을 깎아내리려 무궁화를 비하했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본 무궁화 모습이 그랬기에 부정하기 어려웠다. 봄이 되면 화려한 벚꽃을 보며 일본 꽃이라는 거부감에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면서도, '왜 우리 무궁화는 저토록 화려하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차라리 나라 꽃을 더 화사한 꽃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여론 조사에서 상당 수의 국민도 바꾸자는 주장을 했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주택 정원이나 가로수에서 자주 무궁화를 보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왜 이 꽃을 심었느냐"고 물었다. 그들 대답은 단순했다. "아름다운 꽃이잖아요?"


무궁화가 아름답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가끔씩 무궁화를 보았지만 여전히 지저분한 가로수일 뿐이었다.


도쿄 미나토 구 가로수로 무궁화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가자치기도 잘 되어 있고 꽃 봉우리 관리도 잘되어서 보기가 좋다.<임 원장 제공>

도쿄 미나토 구 가로수로 무궁화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가자치기도 잘 되어 있고 꽃 봉우리 관리도 잘되어서 보기가 좋다.<임 원장 제공>

그러다 태안 천리포 수목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미국인 민병갈(칼 밀러) 원장이 평생을 바쳐 가꾼 수목원의 숨은 장소에서 본 무궁화 정원은 내가 알던 무궁화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뜨려 놓았다. 넓은 땅에 키우고 관리하고 있는 다양한 품종의 무궁화는 장관이었다.


그때부터 무궁화에 관심을 가졌다. 무궁화는 초여름부터 100일간 꽃을 피운다. 하지만 매일 피고 지는 꽃잎을 따주어야 다음 날 새 꽃이 건강하게 피어난다. 그냥 방치하면 진딧물이 생기고 꽃이 지저분해진다. 가지치기도 중요하다. 중심 줄기를 굵게 키우고 잔가지를 쳐내야 역삼각형의 단정한 모양을 유지하고 깨끗한 꽃을 즐길 수 있다. 무궁화는 사람의 정성이 있어야 빛을 발하는 '고급 수종'이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 본 그 품격 있는 모습은 매일 시든 꽃잎을 따고 정성껏 가지를 친 정성의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몰랐다. 그토록 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의무감에 가로수로 심기만 했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꽃은 짓 물러서 벌레가 생기고 지저분 했지만 그러고도 우린 꽃 탓만 했다.


게이오대학이 있는 도쿄의 미나토구 가로수에서도 무궁화를 많이 볼 수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꽃이 아니라 단지 예뻐서 심는다고 했다. 잘 관리된 무궁화는 반듯하고 우아했다.


벚꽃이 아름답지만 지금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일본인들의 정성 때문이다. 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고, 관련 제품을 만들어 팔고, 축제를 만들고 즐긴다. 이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 무궁화를 더 많이 심고,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관리하자. 국민이 나라 꽃을 즐길 수 있도록 세련된 이벤트도 기획해 보자. 무궁화는 충분히 그럴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우아하고 귀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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