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구연극제 참가작 어떤 작품?…연습현장서 미리 본 4개 연극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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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31 15:13  |  수정 2026-03-31 18:15  |  발행일 2026-03-31

대구 연극인들의 축제 '제43회 대구연극제'가 4월1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매년 대구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이 축제는,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할 대구 대표작을 선발하는 경연의 장이기도 하다. 올해는 4개 극단이 참가한다. 네 팀 모두 창단한 지 기본 10년이 넘은 베테랑 극단들이다.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는 이유다. 올해 대한민국연극제에 대구 대표팀으로 참가하게 될 극단은 어디일까. 연습 현장에 방문해 연극제에 오르는 작품을 미리 들여다봤다.


극단 온누리의 용을 잡는 사람들 연습 모습. 원작과 달리 앙상블로 출연하는 일부 배역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 배역이다. 조현희기자

극단 온누리의 '용을 잡는 사람들' 연습 모습. 원작과 달리 앙상블로 출연하는 일부 배역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 배역이다. 조현희기자

◆극단 온누리 '용을 잡는 사람들'(4월1일 달서아트센터)


극단 온누리의 '용을 잡는 사람들'은 2019년 극단 고도가 대구연극제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원작은 검은 용을 잡으러 떠난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온누리는 주요 배역을 여성 배우로 교체하는 '젠더 프리(Gender-free)'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이국희 온누리 대표는 "당시 작품을 보고 여성 배우들로도 이런 에너지 넘치는 연극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뜻을 같이 하는 배우들을 모아 작품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앙상블로 출연하는 일부 배역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 배역이라 원작과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원작에선 강렬한 에너지와 팀워크, 몰입감이 눈에 띄었다면, 이번 공연은 여성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정선과 내면의 디테일에 집중한다.


아날로그적 표현도 눈에 띈다. 최근 연극들이 영상 기술을 활용해 사실성에 집중하는 것과 다르게, 짧은 장면 하나까지도 배우들의 몸짓과 움직임으로 연출했다. 이 대표는 "추상적인 존재인 '검은 용'을 쫓는 과정에서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인 만큼, 관객들이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이를 위해 연극이 가진 본연의 연극성과 놀이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들을 많이 활용했다"고 했다.


극단 한울림의 판(場): 생과 사의 이야기 연습 모습. 생(生)과 사(死)라는 인물이 인생무상을 노래하며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조현희기자

극단 한울림의 '판(場): 생과 사의 이야기' 연습 모습. 생(生)과 사(死)라는 인물이 인생무상을 노래하며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조현희기자

◆극단 한울림 '판(場): 생과 사의 이야기'(4월3일 달서아트센터)


한울림의 '판(場): 생과 사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 존엄이 아닌 '값'으로 계산되는 세계를 그린 비극이다. 중국 소설 '생사의 마당'에 등장하는 계급 사회에 상상력을 더해 각색한 작품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극은 소작농과 지주 관계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동시대성을 엿볼 수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가난한 민초들은 착취당하며 살아간다. 이 작품은 생존이 곧 죄가 돼버린 세상을 하나의 '판' 위에 펼쳐보인다. 생(生)과 사(死)라는 인물이 인생무상을 노래하며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백광현 연출가는 "삶과 죽음이라는 큰 틀 안에서 계급 사회와 사회 구조를 재미있게 풍자하는 연극"이라며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주제는 무거운데 극은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인물들의 비일상적인 어투, 과감한 장면 전환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여기에 판소리, 무용 등 시·청각적 요소도 다양하게 더해졌다. 백 연출가는 "리얼리티에서 벗어난 연출을 통해 딱딱하지 않게 제작하려 했다"며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라고 전했다.


극단 구리거울의 다만 나 혼자 기뻤다 연습 모습. 천재 화가 이인성의 삶을 재해석하며 예술가의 고독과 고뇌를 그린다.

극단 구리거울의 '다만 나 혼자 기뻤다' 연습 모습. 천재 화가 이인성의 삶을 재해석하며 예술가의 고독과 고뇌를 그린다.

◆극단 구리거울 '다만 나 혼자 기뻤다'(4월4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출신 천재 화가 이인성. 화가가 숨을 거둔 후 맏딸 애향에게 언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애향은 어느새 무관심의 그늘에 아버지를 가둔 사람들의 관심을 경계한다. 그러던 중 화랑 큐레이터 은채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은채는 순수하게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한다. 애향은 은채와 만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풀어내는데….


극단 구리거울의 '다만 나 혼자 기뻤다'는 화가 이인성의 삶을 바탕으로 천재 예술가의 고독과 고뇌를 그리는 작품이다. 이인성의 눈동자 없는 자화상을 모티브로 그의 삶을 재해석했다. 맏딸 애향의 회상을 통한 극중극 형식으로 이인성의 쓸쓸한 내면을 보여준다. 김미정 구리거울 대표는 "예술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대접하는 일"이라며 "천재가 일시적 행사와 문화사업의 소비재로 전락한 지금, 천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려 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무대에는 시와 음악이 흐르고, 예술가들의 지적 대화가 이어진다. 이인성의 스승 서동진, 죽마고우 윤복진 등 대구 출신 예술가들이 등장해 당대가 리얼하게 그려진다. 색다른 연출도 관람 포인트다. 바닥을 캔버스로 활용하고, 무대 벽에 액자 프레임을 배치했다. 인물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차단해 관객이 인물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극단 처용의 노비문서 연습 모습. 윤대성 극작가의 희곡을 처용만의 색깔로 각색했다. 조현희기자

극단 처용의 '노비문서' 연습 모습. 윤대성 극작가의 희곡을 처용만의 색깔로 각색했다. 조현희기자

◆극단 처용 '노비문서'(4월5일 달서아트센터)


"노비문서를 태운다고 노비가 아니게 되는가?"


몽골군이 침입했다. 충주성 목사 이자헌은 성을 지키면 노비를 해방해주겠다고 약속하며 노비문서를 불태운다. 강쇠를 비롯한 노비 별동대는 오직 '양민'이 되겠다는 희망 하나로 몽골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관리들은 기득권을 잃을까 봐 '호구 조사'라는 핑계를 대며 노비들을 다시 속박하려 하는데….


극단 처용의 '노비문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싸움을 다룬 작품이다. 윤대성 극작가의 희곡을 처용만의 색깔로 각색했다. 몽골군의 고려 침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도 형태만 다를 뿐 우리를 옭아매는 노비문서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연봉계약서나 대출증서, 혹은 타인의 시선 등 보이지 않는 문서도 노비문서가 될 수 있다. 연출을 맡은 김일우 처용 부대표는 "과거의 기록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 쥐고 있는 굴레가 무엇인지, 그것을 불태울 용기가 있는지 묻고자 한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연출의 핵심은 역시 노비문서다. 문서를 불태우고 흩날리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상, 조명, 창작곡 등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배우들의 감정 연기와 거친 호흡, 속도감 있는 전개도 몰입도를 더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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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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