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문턱 넘지 못한 산모…대구 의료 인프라 한계 ‘적나라’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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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7 20:08  |  수정 2026-04-07 20:35  |  발행일 2026-04-07
권역모자의료센터 포함 7곳 수용 거부…구급차 50분 대기 ‘골든타임 놓쳐’
쌍둥이 중 1명 사망·1명 뇌손상…고위험 분만 대응체계 전면 재점검 필요
대구시 긴급 간담회 개최…전문의 부족·병상난 해소 대책 마련 ‘숙제’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대기해 있는 가운데 의료진이 병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고위험 산모 이송 지연 사건을 계기로 응급환자 수용 체계의 한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가 대기해 있는 가운데 의료진이 병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고위험 산모 이송 지연 사건을 계기로 응급환자 수용 체계의 한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에서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한밤중 조산 증세를 보였지만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4시간 넘게 떠돌다 아이 한 명을 잃고, 다른 한 명도 뇌손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권역모자의료센터를 포함한 대구지역 병원들이 잇따라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메디시티를 표방하는 대구지역 고위험 분만 의료체계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대구 동구 한 호텔에 머물던 임신 28주 차 산모 A씨(26·미국 국적)는 복통과 함께 조산 증세를 보였다. 남편은 지역 산부인과에 문의했지만 "진료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상급종합병원 방문을 권유 받았다. 상태가 계속 악화되자 이튿날 오전 1시39분쯤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는 대구에 있는 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 등 병원 7곳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 "신생아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산모는 구급차 안에서 50분간 대기해야 했고, 결국 남편이 직접 산모를 태우고 병원을 찾아 나섰다.


이동 중에도 경북·충북 지역 119를 통해 수용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이송 과정에서 혼선이 이어졌다. 산모는 신고 약 4시간 뒤인 오전 5시35분쯤 분당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양수가 터지고 혈압도 떨어진 상태였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 끝에 산모는 목숨을 건졌지만, 쌍둥이 중 한 명은 저산소증으로 숨졌고, 다른 한 명은 뇌손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사고는 고위험 산모를 수용할 대구 의료 인프라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구시는 이번 주 상급종합병원장 등이 참석하는 긴급 간담회를 열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고위험 임산부 의료기관 미수용 사고 경위.<대구시 제공>

고위험 임산부 의료기관 미수용 사고 경위.<대구시 제공>

대구 모자의료센터 현황.<대구시 제공>

대구 모자의료센터 현황.<대구시 제공>

병원 넘치는데 갈 곳 없는 산모…'메디시티 대구'의 끊어진 연결고리

지난 2월말 대구에서 일어난 이른바 '고위험 산모 미수용 사고'를 계기로 지역 의료계 안팎에서는 일반적인 인력난이나 병상 부족을 넘어선 '구조적 결함'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고위험 산모 이송처럼 다수 기관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긴급 상황에서 병원과 행정, 직능단체를 잇는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치명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 의료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메디시티대구협의회'는 2009년 전국 최초의 민·관 협력체를 표방하며 화려하게 출범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등 굵직한 현안마다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며, 대구의 의료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 하지만 민선 8기 출범 이후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이 "민간 법인에 공무원이 참여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탈퇴와 지원금 중단을 결정하면서 협의체는 결국 출범한 지 14년 만에 해산했다. 당시 대구 의료계에서는 "대구 의료를 하나로 묶어 세우던 상징성과 실무 창구가 한꺼번에 붕괴됐다"며 우려가 쏟아졌다.


이번 사고의 1차 원인으로는 산부인과 전문의 부족과 신생아중환자실 포화 상태가 꼽힌다. 하지만 대구 의료 전문가들은 이를 '연결의 실패'로 규정했다. 대구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상급종합병원과 모자의료센터를 갖춘 의료도시다. 개별 기관의 인프라는 충분함에도 정작 위급한 산모 한 명을 지역 내에서 수용하지 못한 것은 시스템의 오작동이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지역 한 산부인과 전문의(50대)는 "고위험 산모는 산부인과뿐 아니라 소아청소년과와 신생아 집중치료팀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사안"이라며 "누가 책임을 지면서 조정할지, 그리고 부족한 기능을 어떻게 상호 보완할지에 대한 상시 협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기관은 존재하되 시스템은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구시는 지난 9월 'AI바이오·메디시티대구협의회'를 재출범시키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5개 의료직능단체와 상급종합병원, 첨복재단 등이 다시 머리를 맞대는 시스템이 구비됐다. 그러나 과거 연간 20억원에 달하던 예산 지원에는 크게 못 미치면서 새 협의체가 실질적인 위기 대응 역량을 갖추기엔 역부족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2019년 3만 명에 육박했던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협의회 해산 이후인 2024년 1만 4천여 명으로 급감했다. 대구 의료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산업 육성이라는 경제적 구호와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공공의료 체계가 결코 별개의 사안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이번 사고가 던진 묵직한 과제는 대구에 병원이 몇 곳이 더 있느냐의 수치적 문제는 아니다. 응급 상황에서 지역 내 병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할 현장 중심의 협업 구조부터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메디시티'라는 브랜드가 산업 육성을 위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가장 위급한 환자 앞에서도 작동하는 실효성 있는 체계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날 대구 지역 사회단체는 '임신부 이송 지연 사망 사건'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부와 대구시에 공공의료 확충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한 임신부가 4시간 넘게 병원을 떠돌다 쌍둥이 중 한 명을 잃은 것은 지역 의료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의사들이 비급여 수익을 좇아 수도권과 특정 진료과에 몰리면서 지역 간 의료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또 "대구는 2차 진료 병상 밀도가 7대 광역시 중 최하위 수준"이라며 "경북대병원과 대구의료원도 공공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응급실 뺑뺑이 잡는다더니"…고위험 산모에겐 멈춰버린 '대구 이송망'

중증 응급환자들에 대한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도입된 '다중이송전원협진망'이 고위험 산모 앞에서는 무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중증 응급환자 이송에는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으나, 산부인과 진료와 신생아 처치가 동시에 요구되는 특수 상황에서는 제도적 허점이 여실히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시는 2023년 발생한 응급환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중증 환자의 신속한 병원 배정을 위해 협진망을 가동해왔다.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의료기관과 협의해 수용 병원을 결정하고, 협의가 결렬될 경우 센터가 직접 수용 병원을 지정하는 '직권 이송' 체계가 핵심이다. 실제 운영 성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협진망 가동 건수는 2024년 616건에서 지난해에는 804건으로 대폭 늘어 났다. 이 중 직권 이송 결정 또한 각각 506건과 728건에 달해 현장의 병상 확보난을 해결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조기 출산이 임박했거나, 고위험 분만 등 복합적인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정작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외상 환자와 달리, 산모 응급 상황은 산과 전문의의 수술 역량과 태어난 신생아를 즉각 수용할 수 있는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이 동시에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은 제도보다 '인프라 부재'를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병원 응급실 문이 열려 있더라도 분만 인력이 부족하거나 신생아 병상이 포화 상태라면 사실상 수용이 불가능하다.


특히 센터의 '직권 이송' 명령 역시 최종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주요 대학병원들이 전문의 부재와 병상 부족을 이유로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강제로 환자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이송 시간은 하염없이 지연되고 산모와 태아의 생명은 위협받게 된다.


대구 의료계에서는 이번 '쌍둥이 임산부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단순한 이송 지연이 아닌, '범용 응급 체계'와 '특수 분만 시스템' 간의 엇박자로 보고 있다. 다학제 협진과 배후 진료 인프라가 필수적인 고위험 산모의 특수성을 일반 중증 환자 중심의 이송망이 담아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송 절차 개선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명 공개를 거절한 대구 달서구 종합병원 A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환자를 실어나르는 통로(이송망)를 아무리 넓혀도, 그 끝에서 환자를 받아낼 '그릇(진료 기반)'이 비어있다면 무용지물"이라며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지역 의료 역량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 보건의료정책과 한 간부는 "의정 갈등 여파로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지원자가 전무한 실정"이라며 인력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 광주, 부산, 경남 등 타지 환자들까지 대구 모자의료센터로 몰리면서 진료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며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7일 대구시에서 열린 긴급 간담회에서 공무원들이 고위험 산모 이송 지연 사고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병원 수용 거부로 장시간 이송을 지연받다 아이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도 뇌손상을 입은 사고 이후, 지역 모자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노진실 기자

7일 대구시에서 열린 긴급 간담회에서 공무원들이 고위험 산모 이송 지연 사고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병원 수용 거부로 장시간 이송을 지연받다 아이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도 뇌손상을 입은 사고 이후, 지역 모자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노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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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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