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삼덕동 골목

  • 조진범
  • |
  • 입력 2026-05-05 09:41  |  발행일 2026-05-05

대구 삼덕(三德)동은 대구 역사의 거대한 저장고이다. 1947년 행정구역으로 공식 등장한 삼덕동은 천덕(天德), 지덕(地德), 인덕(人德)을 갖춘 곳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주거지로 개발된 '삼국정(三國町·미쿠니마치)'이 전신이다. 지금도 일본식 가옥인 적산가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옥고를 치르거나 순국한 대구형무소도 존재했다.


대구 역사가 켜켜이 쌓인 삼덕동이 뉴트로(New+Retro) 문화 및 청년 창업의 성지로 부활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이 낡은 적산가옥이나 붉은 벽돌의 주택들을 허물지 않고 식당, 카페로 개조했다. 삼덕동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골목의 힘'에 있다. 굽이진 골목 끝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풍경과 낡은 벽면에 덧칠해진 세월의 흔적이 '인간적 휴식'을 제공한다. 디지털 공간인 SNS를 통해 유명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곳이 삼덕동 골목이다.


골목의 역습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본 도쿄의 시모키타자와는 '미로 같은 골목'으로 유명하고, 영국 런던의 쇼어디치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벽면에 그린 그래피티로 운명을 바꿨다.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는 중세 시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보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장의 녹슨 흔적이 만든 서울 성수동,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부산 영도의 좁고 가파른 계단, 무덤과 일상이 공존하는 경주 황리단길, 근대 건축과 선교의 역사가 흐르는 광주 양림동이 골목의 품격을 뽐내고 있다. 삼덕동은 '인간 가치의 역습' 현장으로 전 세계 골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기자 이미지

조진범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