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수사

  •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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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14 08:28  |  발행일 2026-05-14
장성재기자〈경북부〉

장성재기자〈경북부〉

"감은사지 가기 전에 '한수사'가 먼저 나온다."


경주에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두고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한수사'는 절이 아니다. 문무대왕면 장항리 외딴 곳에 은자처럼 자리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빗댄 말이다. 경주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입지 탓에 업무상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붙은 별명이다.


농담이지만 뼈가 있다. 한수원 본사는 분명 경주에 있다. 하지만 도심권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멀다. 행정구역상 경주에 있는 대표 공기업이지만 생활권과 소비권은 도심과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한수원 본사 이전론은 다시 고개를 든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오중기 경북도지사 예비후보가 카드를 꺼냈다. 오 후보는 한수원 본사 시내권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현재 본사가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어 경주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기존 본사는 연수원이나 관광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주 시내권에서 보면 솔깃한 이야기다. 1천7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본사가 도심으로 들어오면 상권 활성화와 정주 인구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직원들의 생활권이 시내와 연결되면 구도심의 식당, 카페, 주거, 교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한수원 본사 인원이 늘면서 사무공간 부족 문제가 거론돼 온 점도 이전론에 명분을 보탠다.


하지만 동경주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문무대왕면, 양남면, 감포읍 주민들에게 한수원 본사는 원전과 방폐장 현실을 감내해 온 지역에 남은 상징이자 약속에 가깝다. 도심권이 '경제 효과'를 말할 때 동경주는 '무엇이 남느냐'를 먼저 묻는다.


오 후보는 현 본사를 전국 단위 연수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감포에서 포항까지 이어지는 관광문화권과 연계하면 교육과 관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문무대왕면 발전협의회 등 동경주 단체는 "한수원 본사를 이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 현실도 녹록지 않다. 한전과 원전 수출 주도권 논란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사 이전 논의까지 수면 위로 오르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시각이 많다.


이전론이 늘 부딪히는 지점도 여기다. 본사를 옮기면 동경주가 납득할 대체사업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풀리지 않으면 이전론은 정책이 아니라 지역 갈등의 불씨가 된다.


그럼에도 한수원 본사 이전론은 이번에도 선거판에 올랐다. 또 사라질 공약일 수도 있고 경주 도심과 동경주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묻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정치인의 구호가 아니라 주민들이 받아들일 만한 매력적이고 구체적인 설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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