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람 전쟁사학자·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1963년 포크음악 잡지인 '브로드사이드(Broadside)'가 창간 1주년 기념 음반을 냈다. 앨범에 담긴 곡 중 '블라인드 보이 그런트(Blind Boy Grunt)'라는 활동명을 쓴 가수의 '존 브라운(John Brown)'은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웅얼거리는 듯한 독특한 창법과 리듬을 타는 능력은 포크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빌보드 매거진'은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다면, 팝-포크 계에서 오랫동안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다만 평론가들은 그런트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세계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극에 치달은 상황 하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가 빚어졌고, 미-소가 핵 발사 버튼에 손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트는 이런 배경을 담은 곡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 1962)'를 무대에서 부른 적이 있다. 사람들은 핵무기가 떨어지기 전에 머리 속에 있는 곡을 세상에 꺼내놓으려던 그런트의 내면이 곡에 담겼다고 말했다. 악보나 녹음 없이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던 이 곡은 1995년 <브로드사이드>란 제목의 '미발표곡 모음집'에 실렸다.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아 모두 모여라. 내 이야기 하나를 해줄 테니.
이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한 밤의 이야기. 당신들도 기억하겠지.
제대로 진실을 말해주겠어. 친구가 털어놓듯 말이야.
이것은 세계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무섭고 두려운 밤에 관한 거야.
나는 그저 인도를 따라 걷고 있었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 때 라디오에서 뭐라고 하더니 알람이 들리더군.
러시아 배들이 저 멀리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고
우리는 이른 새벽,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까봐 겁에 질렸지.
나는 전날 별 것 아닌 일로 벌였던 언쟁 때문에 걱정을 하다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문득 알았어.
하지만 전날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었지.
그런데 그 일은 오늘 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 곡은 핵전쟁의 공포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거창한 정치 구호나 이념 대신 거리의 행인, 라디오 방송, 사소한 언쟁 같은 일상적 소재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불안과 긴장을 포착했다. 음악적으로는 간결한 포크 스타일이 두드러지며 재즈, 블루스, 록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면모도 엿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트는 미국 포크 음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른다. 1960년대 시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을 상징하는 가수 가운데 한 명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더 지나서는 그래미 어워드 10회 수상, 록앤롤 명예의 전당 헌액 그리고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주인공이 된다.
'블라인드 보이 그런트'의 본명은 로버트 짐머먼(Robert Allen Zimmerman)이다. 로버트 짐머먼은 가명을 여러 개 갖고 활동했는데 블라인드 보이 그런트는 말하자면 언더 그라운드 활동을 할 때 쓰는 것이었다. 그의 가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밥 딜런(Bob Dylan)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상] 대구 당선인들의 당찬 출발 알림···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증 교부식](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606/news-m.v1.20260608.b15f2d693d2847bbb7551e6037890bb9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