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양 외과의사가 바라본 일본 풍경-19] 일본 스포츠·공연의 힘, ‘넓은 저변’에 답이 있다

  • 임재양(임재양외과 원장,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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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18 09:10  |  발행일 2026-06-18
평일 다카라츠카 공연. 여성들이 친구들과 모여 차 한잔 마시고, 미소년에 대한 소녀적 추억을 얘기하고, 만화 같은 배우들 옷을 보면서 공연을 즐긴다. <임재양 원장 제공>

평일 다카라츠카 공연. 여성들이 친구들과 모여 차 한잔 마시고, 미소년에 대한 소녀적 추억을 얘기하고, 만화 같은 배우들 옷을 보면서 공연을 즐긴다. <임재양 원장 제공>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이 목표다. 한국팀은 평가전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일본은 강팀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 6연승을 했으며 실점도 거의 없었고 조직력도 탄탄했다. 10년 전만 해도 야구, 축구는 한국과 경쟁 상대였지만 지금은 한국이 뒤처져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야구, 축구를 즐기는 저변의 차이라고 본다.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 운동을 비롯한 특활시간이 자꾸 줄어들지만 일본은 아주 활발하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한 가지 이상 운동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추어 활동은 대학교,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진다. 우리는 엘리트 중심의 운동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만 일본은 저변이 넓은 가운데에서 좋은 성적이 나온다.


한여름에 열리는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는 130년 역사를 자랑한다. 전국 4천여 개 팀(우린 100개 팀) 중 본선 49개 팀이 참가하는 경기에 온 국민이 열광한다. 패배에도 인간승리 드라마가 연출되고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어린 학생들의 공놀이인데 즐기고 감동하는 것은 세계대회를 보는 것 이상이다.


요즘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뜨겁다. 과거 드라마 '겨울연가'부터 시작된 한류는 드라마, K-POP을 넘어 음식까지 확장되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도 있지만,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일본인들의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한류만이 아니라 국적에 관계없이 자기들이 즐기고 열광한다.


공연문화로 시선을 돌리면 그 저력이 더욱 뚜렷하다. 일본 전역에는 10만 개가 넘는 마을단위 '마츠리(축제)'가 있다. 주민들은 스스로 돈을 모으고 땀 흘려 연습하며 축제를 즐긴다. 상업공연계에서도 '극단 사계(시키)'는 30년 넘게 전용극장에서 같은 뮤지컬을 상영 중인데 평일 낮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일본인들로 항상 만원이다.


동네 축제, 짜임새도 없이 어설프지만 모두 같이 준비하고 모여서 경험을 공유한다. <임 원장 제공>

동네 축제, 짜임새도 없이 어설프지만 모두 같이 준비하고 모여서 경험을 공유한다. <임 원장 제공>

110년 역사의 '다카라츠카 가극단'은 더욱 독보적이다. 1913년 한큐 전철에서 한적한 시골 온천 마을이었던 다카라츠카에 승객 유치를 위해 극단을 창설했다. 남성 중심의 전통극 가부키에 맞서 전원 여성으로만 구성된 서양식 가극을 선보인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극단을 '학교' 형태로 만들어 엄격한 예절을 가르치면서 최고의 신부수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다카라츠카 무대는 전부 여성들이 채우며 여성이 남성 역할을 맡는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뼈를 깎는 발성 훈련으로 완성된 이들의 목소리와 몸짓은 실제 남성보다 더 로맨틱하고 완벽한 환상을 구현한다. 하루 2번 365일 쉬지 않고 공연을 하는데도 한달전 예약을 해야 한다. 평일 낮에도 1천석 규모의 극장이 중년 여성 관객들로 매진되는 비결은 탄탄한 스토리를 보여주는 1부 연극과 화려한 쇼가 펼쳐지는 2부 구성이 관객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성배우들의 남자 역할은 순정만화에서 보는 미소년에 대한 동경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친구와 모여서 소녀적 추억을 생각하고 동화 같은 옷을 입은 배우들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일본의 스포츠와 공연이 보여주는 힘은 결국 '넓고 탄탄한 저변'에서 나온다. 개인과 가족, 사회와 국가가 일상의 작은 일조차 조직화하고 참여를 유도하며 기꺼이 즐기는 구조가 확립되어 있다. 아이들이 공을 던져도 박수를 치고, 동네 강변에 꽃이 피면 선물을 주고받고 추억을 나눈다. 동네에 운동장을 만들고, 노래할 수 있는 전용극장을 지속적으로 지탱해주니 문화가 살고 일상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우리도 이제 엘리트 중심으로 경기 결과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행사를, 공연을, 그리고 스포츠를 주체적으로 즐기는 두터운 저변부터 다져나가야 할 때다. 성적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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