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 대경미래혁신포럼 대표·대구대 전 총장직무대행
호르무즈 해협의 극적인 종전 합의 속에서도 지역 제조업의 원가계산서는 흔들린다. 지경학적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은 단순한 외교·안보 이슈만이 아니다. 미·이란 간 양해각서 체결로 최악은 넘겼으나, 글로벌 분쟁은 언제든 기업의 원가와 공급망을 흔드는 상시적 변수다. 원유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구조상, 일시적 긴장 완화에 안주할 여유는 없다. 국제 유가와 환율 변동성, 물류비 파고는 여전히 지역 현장으로 직결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큰 대구·경북 경제는 이러한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자동차 부품, 철강 등 전통 산업은 물론 미래 동력인 이차전지, 로봇, 모빌리티 등 미래 신산업도 공급망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이들 산업은 리튬, 니켈 등 핵심 원자재를 대부분 해외에 의존한다. 특히 핵심 광물의 특정국 편중 비율이 80~90%를 상회하는 고질적 취약성은 위기 상황에서 한순간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제 지역 기업들은 과거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핵심 원칙이었던 '적기 생산(Just-in-Time)'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만약의 사태(Just-in-Case)'에 대비하는 회복탄력성 구축이 최우선 과제다. 공급처 다변화와 전략 재고 확보는 생존 조건이다. 일본 역시 경제안보 정책을 통해 핵심 광물 공급망 관리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 현상'은 구조 개편이 시급한 중소 제조업체들의 금융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를 돌파하려면 생산 비용 구조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이미 일부 선도 기업들이 AI 기반 공정관리와 고도화된 스마트공장을 통해 에너지 소비와 불량률을 줄이며 자구책을 찾아가고 있다.
지역 기업의 이러한 사투에 지자체와 유관기관도 힘을 보태야 한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략 원자재의 공동 비축 시스템을 다지고 실시간 공급망 위험지도를 구축하는 한편, 중소기업형 환헤지 체계를 마련하는 등 제도적 방어벽을 쳐주어야 한다.
지경학적 위기는 기업엔 불확실성이자 산업 체질을 바꾸는 계기다. 단순히 최저 비용만 쫓는 기업은 도태된다. 엄중한 위기 속에서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재편하고 디지털 전환으로 무장한 기업만이 새로운 시장 표준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 먼 호르무즈의 파도가 대구 공장을 흔드는 시대다. 효율보다 회복탄력성이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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