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냉면이라는 음식은 오묘한 구석이 있다. 국수는 국수이되 일반 국수와는 차등을 둔다. 값도 비싸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옥길 박사는 집에 오는 손님에게는 교수, 학생 구분 없이 냉면을 직접 뽑아 대접한 것으로 유명하다.
"냉면이나 한 그릇 합시다" 하면 냉면만 달랑 먹는 경우는 드물다. 식사비를 어느 쪽에서 부담하든 냉면을 거론하게 되면 주머니 깨나 열 각오를 해야만 한다. 빈대떡을 곁들이기도 하고, 꽃등심 정도 몇 점 구운 후에 냉면을 시키기도 한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일어난 일이다. 딸아이가 중2 때의 일이니 오래전의 기억이다. 본선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중3짜리와 딱 마주쳤다. 중3은 우리 아이보다 덩치도 컸고, 서울 출신이었고, 잘했다. 무엇보다 악기가 좋았다. 콩쿠르 시작 전 본선 자유곡을 리허설하는데, 화려하고 풍부한 명기(名器) 소리에 덩치도 작은데다 바이올린도 국산이고 지방에서 올라간 딸아이는 위축됐다.
발표 결과 우리 아이가 대상을 받았을 때 최우수상을 받은 중3 엄마가 악수를 청했다. "축하해요. 냉면이라도 사시죠." 입상한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식당에 몰려가니 10명 정도 됐다. 사고가 났다. 냉면을 먹던 중3 짜리가 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놀라서 허겁지겁 아이를 데리고 나간 엄마도 토하는 눈치였다. 갑자기 내 앞에 앉은 우수상 엄마가 젓가락을 탁 놓으며 나에게 눈을 흘겼다. "아이들한테 냉면은 무슨~. 밥이나 살 일이지."
주말에 에세이 회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날씨도 더운데 냉면이나 한 그릇 할까요?" 우리는 탈북 주민이 한다는 '대동강'으로 갔다. 냉면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눈 흘기거나 토하는 사람도 없어 기분 좋은 식사가 됐다. 빈대떡을 곁들여 먹으니 여름이 오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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