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선수들이 꽃”…K리그 최초 ‘원클럽맨’ 이종하 포항스틸러스 단장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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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7 14:25  |  발행일 2026-07-17
실업선수 출신 첫 단장 ‘새 역사’
축구화 대신 서류 가방을
정들면 떠나보내야 하는 법
포항의 저력 ‘화수분 축구’
이종하 단장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이 구단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 단장에 오른 사례다. 15일 포항스틸러스 구단 사무실의 구단 엠블럼 앞에서 화이팅을 하고 있는 이종하 단장 모습.<김기태기자>

이종하 단장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이 구단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 단장에 오른 사례다. 15일 포항스틸러스 구단 사무실의 구단 엠블럼 앞에서 화이팅을 하고 있는 이종하 단장 모습.<김기태기자>

경기도 김포 출신인 이종하 포항스틸러스 단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한국 축구의 전설이자 '포항 축구의 시조'로 불리는 이회택 감독의 고향이 바로 그의 고향이다. 영등포공고와 숭실대를 거쳐 1987년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했지만, 정작 그가 발을 들인 곳은 프로팀이 아니었다. 당시 포철은 프로팀과 실업팀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프로행을 위한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그는 실업팀 선수로 시작해야 했다. 같은 해 졸업 동기 중 신인왕을 받은 김주성(대우)을 보며 느꼈을 아쉬움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업선수 출신 첫 단장 '새 역사'


2023년 1월 10일, 이종하 단장은 포항스틸러스 제8대 단장에 취임했다. 이 단장은 K리그 사상 처음으로, 구단의 모태였던 실업축구단 시절 뛰었던 선수 출신이 자신이 몸담았던 바로 그 구단의 단장 자리에 올랐다. 조광래 대구FC 사장, 이영표·김병지 강원FC 사장, 이흥실 김천상무 단장 등 K리그 출신 축구행정가는 여럿 있었지만, 자신이 뛰던 원래 소속팀에서 사장·단장까지 오른 경우는 이종하 단장이 처음이다. 마침 창단 50주년을 맞아 그의 취임은 더욱 뜻 깊었다. 실업축구 선수 4년, 잠시 몸담았던 포스코 행정관리부 근무, 그리고 1996년 포항스틸러스 축구단 주무로 재입사한 뒤 선수지원팀장, 홍보마케팅팀장, 꿈나무창조기획단장, 전력강화실장을 거치기까지 근 27년에 걸친 프런트 경력이 그를 단장 자리로 이끈 발판이 됐다.


◆축구화 대신 서류 가방을


1991년 선수 은퇴 이후 곧바로 사무직으로 전환한 그에게는 낯선 시작이었다. "고민이 많았지요. 과연 내가 대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축구선수로만 20년 가까이 해왔기 때문에 적응하기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요." 그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돌아봤다. "그 당시엔 더욱이 구단에 단장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하고, 어떻게 버틸까 근무하면서도 사직을 고민하면서, 참고 참은 게 이렇게 포항에 뿌리를 내리고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1995년 포항제철 축구단이 법인화되며 프로팀과 실업팀이 통합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이재선 단장이 그에게 선수단 주무 자리를 제안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듬해부터 주무로 축구단에 복귀했고, 박성화·최순호 감독 체제에서 여러 해 동안 선수단 지원 업무를 맡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시절로는 브라질 출신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을 처음 영입했던 때를 꼽았다. "그때 처음이었어요. 과연 우리가 외국인 감독을 처음 써보는데, 이 외국인 감독을 어떻게 우리가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이 뭐냐, 일단 경험 있는 수석 코치를 둬야 될 거다." 그는 김경호, 박태하 등 국내 지도자들을 수석코치로 배치해 K리그의 흐름을 함께 조율하도록 했던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냥 자기(파리아스)가 데려온 코치들만 써갖고는 안 되거든요. 경험 없는 코치 써갖고는 어드바이스할 수 있는 부분도 부족하고, 그러다 보면 엇박자가 나거든요."


선수단 주무를 시작으로 선수지원팀장, 홍보마케팅팀장, 전력강화실장을 거쳐 단장에 오르기까지, 프런트의 거의 모든 자리를 밟아온 그는 "축구단은 선수들이 꽃"이라고 강조했다.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선수단을 구성하려면 일찍부터 준비를 해서 국내·외국인 선수를 이적료 없는 FA(free agent) 대상자로 선정해 감독, 전력강화팀, 스카우터, 단장이 함께 주기적으로 회의를 합니다. 다른 단장들과 다른 부분은 선수 특징을 감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제가 직접 경기장에 나가서 선수를 확인까지 합니다."


◆정들면 떠나보내야 하는 법


30년 가까이 프런트에 몸담으며 숱한 선수들을 만나고 떠나보낸 그에게 가장 애틋한 이름을 물었다. 주저 없이 나온 이름은 브라질 출신 공격수 '제카'였다. "1년 만에 보내는데 그게 참 애처롭더라고요. 어렵게 데려왔어요. 당시 구단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서 진짜 고생고생해서 데려와 갖고 요긴하게 활용했어요. 그렇게 애정을 쏟았는데 또다시 중국으로 임대했으니 참 애처롭더라고요." 3년 계약으로 영입했지만 구단 사정으로 조기에 중국행이 결정된 과정을 두고 그는 "보내기 싫은 선수지만, 좋은 조건이 오는데 어쩌겠어요. 서로 미안함을 나눴어요"라고 회상했다.


또 한 명은 수비수 황재원이다. 무릎 부상으로 한때 선수단 안팎에서 방출이 검토됐던 선수였다. "감독들, 코치들도 결론을 내렸는데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김현식 사장님 계실 때, '이렇게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를 왜 버리냐, 다시 제대로 고쳐라' 하셨어요."


병원 재검진과 재활을 거쳐 복귀한 황재원은 이후 몇 시즌을 더 뛰며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 됐고, 이후 고액으로 이적하며 구단에 실질적인 보상까지 안겼다. "그런 선수들이 상당히 기억에 남죠." 그는 홍명보, 황선홍 등 1990년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뛰던 시절도 함께 떠올리며 "그때가 진짜 최고 전성기였다"고 말했다.


◆포항의 저력 '화수분 축구'


이종하 단장이 가장 강조하는 대목은 유스 시스템이다. "저희는 2003년부터 그 당시 포철공고·포철중·포철동초를 흡수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유스시스템을 도입해 많은 선수들을 육성했지요." 이동국, 신광훈, 손준호, 김승대, 황희찬 등이 이 시스템을 거쳐 성장한 대표적인 이름이다. "외부 선수 영입은 비용에 한계가 있어서 안으로 눈을 돌려 유소년을 키워서 자급자족한 것이 아주 큰 효과를 보면서, 저비용 고효율 측면에서 대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그는 재임 기간 구단이 12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단장 취임 이후에도 2023~24년 코리아컵 2연패를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1973년 창단된 포항스틸러스는 축구 전용구장 건립과 송라클럽하우스 준공, 유소년 시스템 도입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구단이다. 이종하 단장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이 구단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이 단장에 오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축구단 밑바닥부터 커나간 프런트가 단장으로 올라서며, 책임과 어깨가 무겁다는 것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올해로 창단 53주년을 맞은 그는 "반세기를 지나오면서 포항스틸러스가 만들어온 역사와 전통을 계승·발전시켜 100년 구단으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겠다"며 6번째 K리그 우승을 향한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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