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시간이 멈춘 토담길, 800년 숨결을 품은 영덕 괴시마을을 걷다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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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27 21:55  |  발행일 2026-07-27
기와지붕과 흙담이 조화를 이루는 괴시마을의 전통고택. 조선 후기 양반가옥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세월의 흔적을 품고 서 있다. <남두백기자>

기와지붕과 흙담이 조화를 이루는 괴시마을의 전통고택. 조선 후기 양반가옥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세월의 흔적을 품고 서 있다. <남두백기자>

동해안을 따라 시원하게 뻗은 7번 국도를 벗어나 영해면 소재지로 들어선다. 드넓은 고래불 들녘을 지나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에 이르면 번잡한 현대의 시간축이 뚝 끊기고 조선시대로 들어선 듯한 묘한 착각에 빠진다. 고즈넉한 기와지붕이 파도처럼 물결치는 곳, 경북 북부 해안지방의 대표적인 반촌(班村)이자 전국에서 8번째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영덕 괴시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서면 안내표지판 너머로 200여 년의 세월을 버텨낸 고택 30여 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여느 관광지처럼 박제된 민속촌이 아니다. 낡은 툇마루에는 여전히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고 담장 틈새로 피어난 들꽃과 초록색 넝쿨이 현재도 삶의 터전임을 말하고 있다.


◆호지촌(濠池村)에서 괴시(槐市)로, 이름에 새겨진 고려의 대학자


괴시마을의 본래 이름은 '늪이 많고 연못이 있다' 하여 호지촌(濠池村)이었다. 1260년 무렵 함창 김씨가 처음 터를 잡았고 이후 조선 인조 대(1630년 무렵) 영양 남씨가 정착하면서 단일 문중의 집성촌으로 굳어졌다.


대구에서 처음 이곳을 찾은 최보경씨는"지금도 이렇게 잘 보전돼 있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부잣집이었느지 상상이 안된다"며 놀라워했다.


이 평범하던 해안가 마을에 '괴시'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은 것은 고려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 덕분이다. 선생의 외가(함창 김씨)가 바로 이곳이었고 선생 역시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원나라에서 명성을 떨치고 귀국하던 이색은 고향 마을의 시야가 넓고 아름다운 풍광이 중국의 '괴시(槐市)'와 닮았다 하여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마을 뒷산 언덕에 오르면 목은 선생의 생가터와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어 문학뿐 아니라 여말선초 역사의 거대한 한 축을 당당히 지탱했던 학자의 자취를 걸음걸음 느낄 수 있다.


◆ 매서운 해풍이 빚어낸 폐쇄적 건축, 'ㅁ'자형 뜰집의 묘미


괴시마을의 중심이자 영양남씨 괴시파 문중의 종택. 오랜 세월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종택은 괴시마을이 명문가 집성촌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보여준다. <남두백기자>

괴시마을의 중심이자 영양남씨 괴시파 문중의 종택. 오랜 세월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종택은 괴시마을이 명문가 집성촌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보여준다. <남두백기자>

발걸음을 마을 안쪽으로 옮겨 '영양남씨 괴시파종택'을 비롯한 고택들을 찬찬히 뜯어본다. 가옥들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서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경북 북부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뜰집('ㅁ'자형 주택)'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구 시니어 회원들과 함께 온 이영수씨는 "괴시마을이 전체가 생각보다 관리가 잘됐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하면서 "살고 있는 주민이 많지 않아 얘기를 나눠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양반가의 과시용이 아니다. 겨울이면 살을 에는 듯 매섭게 불어오는 동해의 바닷바람을 의식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흔적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틈새 없이 결합하여 바람을 막아주고 그 중심에 아늑한 마당을 품어 안았다.


특히 괴시마을 뜰집들은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통래퇴칸'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으나 대들보 하나, 문창살 하나에 서린 조상들의 이성적이고도 정성어린 손길이 고스란히 만져진다.


이곳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살고 있는 남용순씨는 "괴시마을이 지금까지 잘 관리되는 데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인이라면 절대 관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토담과 돌담 사이로 이어지는 괴시마을 골목길. 주민들의 삶과 역사가 켜켜이 쌓인 길 위로 옛 정취가 그대로 흐른다. <남두백기자>

낮은 토담과 돌담 사이로 이어지는 괴시마을 골목길. 주민들의 삶과 역사가 켜켜이 쌓인 길 위로 옛 정취가 그대로 흐른다. <남두백기자>

◆ 지워지지 않는 흔적, 고려와 조선 그리고 오늘이 함께 사는 마을


전통 한옥과 토담장이 어우러진 영덕 괴시마을 전경.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은 800년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전통 마을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간직하고 있다. <남두백기자>

전통 한옥과 토담장이 어우러진 영덕 괴시마을 전경.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은 800년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전통 마을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간직하고 있다. <남두백기자>

마을 중심의 넓은 연못가에는 연꽃들이 조용히 머리를 들 준비를 하고 있다. 흙돌담길 따라 걷는 마을길은 인위적이지 않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진 돌담길을 걷다 보면 대남댁, 물소와고택 등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대문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태어난 옛집에서 생활 중인 남중심씨는 "옛날 전통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끼지만, 일상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상당히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원형을 간직한 영덕 괴시마을 입구. 마을 안내표지판 너머로 전통 한옥과 토담길이 이어지며 800여 년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남두백기자>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원형을 간직한 영덕 괴시마을 입구. 마을 안내표지판 너머로 전통 한옥과 토담길이 이어지며 800여 년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남두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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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두백

영덕을 대게 잘 아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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