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이가 간다] “이 동네서 저 모르면 간첩”…‘코코’ 타고 거리 누비는 프레시 매니저

  • 조윤화
  • |
  • 입력 2026-07-30 21:05  |  수정 2026-07-30 23:43  |  발행일 2026-07-30
29일 오후 본보 조윤화 기자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주택가에서 탑승형 전동 냉장 전동카트를 타고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9일 오후 본보 조윤화 기자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주택가에서 탑승형 전동 냉장 전동카트를 타고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요구르트 주세요."


어릴적 한 번쯤 불러봤을 법한 친숙한 노랫말이다.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쉽게 야쿠르트를 살 수 있지만, '야쿠르트' 하면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먼저 떠오른다. 이들의 정식 명칭은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이고, 타고 다니는 탑승형 냉장 전동카트는 '코코(Cold and Cool의 줄임말)'라고 부른다. 한낮 기온이 36℃를 웃도는 가마솥 무더위에도 고객을 찾아 거리 곳곳을 누비는 이들의 하루는 어떨까. 영남일보 취재진이 19년차 프레시 매니저의 하루를 함께해봤다.


◆숨 막힐 듯한 더위에도 잃지 않는 '방긋' 미소


29일 오전 본보 조윤화 기자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hy다사점 냉장 창고에서 배달할 제품을 확인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9일 오전 본보 조윤화 기자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hy다사점 냉장 창고에서 배달할 제품을 확인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9일 오전 9시쯤 대구 달성군 다사읍, 19년 차 프레시 매니저 이순희(여·60)씨가 냉장창고에서 제품을 하나씩 꺼내 챙겼다. 이미 이른 새벽 배송을 한 차례 마친 터라 챙겨야 할 물량은 많지 않았지만, 제품 종류가 워낙 다양해 이씨의 설명을 들어가며 취재진도 더듬더듬 손을 보탰다.


냉장창고에서 챙긴 제품은 곧바로 시속 4~8㎞인 냉장 전동카트 '코코' 안으로 향한다. 이씨는 빈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제품 방향과 간격을 연신 맞췄다. 그는 "손님이 어떤 제품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두는 것도 판매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아침부터 기온이 34℃에 육박해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턱 막힐 듯 더웠지만, 이씨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는 무뚝뚝한 편이지만, 고객을 만날 땐 늘 밝은 얼굴로 대한다"고 했다. 이 같은 성실함과 친화력을 무기 삼은 이씨는 2024년 '세일즈퀸(판매실적 1위)'에 선정됐고, 지난해 우수사원상도 받았다.


정기 배송을 받는 한 카페로 향하는 길에도 이씨는 오가는 주민들과 끊임없이 인사를 나눴다. "너무 더운데 괜찮으냐" "장사는 되느냐"는 안부 인사가 이어졌다. 19년 동안 같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빈 덕분에 이씨와 주민들은 단순한 판매자와 고객을 넘어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됐단다.


이씨는 "이 동네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이라며 "야쿠르트를 사 먹던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결혼한 뒤 다시 자기 아이를 데리고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이 일을 정말 오래 했구나 싶으면서 뿌듯하다"고 웃어보였다.


정기 고객을 위한 배송이 끝난 오전 10시쯤. 이씨는 야외 판매를 위해 죽곡어린이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편의점과 카페가 한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선 시대임에도 '야쿠르트 아줌마'를 찾는 발길은 계속 됐다.


비결은 '맞춤형'이다. 이씨는 고객 연령, 생활 습관에 맞춰 제품을 권했다. 한 중년 남성이 다가오자 이씨는 "술을 자주 드시면 간 건강에 좋은 이 제품이 괜찮다"며 음료 한 병을 건넸다. 남성은 말없이 병을 단숨에 비운 뒤 빈병을 돌려주고 발걸음을 옮겼다.


외국인 고객도 부쩍 늘었다. 이씨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 외국인 손님들도 자주 찾아온다.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한국어로 주문하거나 제품 사진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큰 어려움 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에 맞게 업무 시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


이씨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오전 3시쯤 일어나 집을 나서고, 오전 4시쯤 창고에서 제품을 챙긴 뒤 100여 세대 배송에 나선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낯선 아파트의 동과 출입구를 찾아 헤매느라 새벽 배송에만 3시간 가까이 쓰였다고 한다.


이씨는 "아파트마다 동 배치, 출입구 위치가 달라 동선을 익히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지금은 가장 효율적인 이동경로와 각 세대마다 어떤 제품을 받아보는지가 모두 머릿속에 들어 있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29일 오후 본보 조윤화 기자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주택가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9일 오후 본보 조윤화 기자가 대구 달성군 다사읍 주택가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배송 중 전날 놓아둔 제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을 발견하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고객이 일어날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어 별일 없는지 확인한다. 큰 위기 상황을 발견한 적은 없지만, 매일 비슷한 시간에 고객의 집 앞을 찾는 프레시 매니저가 자연스럽게 이웃의 안부까지 살피는 셈이다.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이씨는 잠시 집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땀에 젖은 몸을 씻은 뒤 다시 거리로 나오기 위해서다. 이씨는 "더워서 땀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식품을 판매하는 일이니 고객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집에 들어가면 샤워부터 하고 옷도 정돈한 뒤 다시 나온다"고 말했다.


오후 3~4시쯤 다시 코코를 끌고 거리로 나온 이씨의 일은 오후 6시까지 이어진다. 이후 영업점으로 돌아가 코코와 주변을 정리하고, 다음날 배송할 제품을 확인하면 오후 7시가 돼서야 하루 업무가 끝난다.


이씨는 "누가 정해진 시간에 일하라고 강요하는 직업이 아니라 내 상황에 맞게 시간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집안일도 챙기면서 내가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자 이미지

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