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피고인의 아버지 장례를 돕다

  •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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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02 16:38  |  발행일 2026-08-03
이은미 변호사

이은미 변호사

어느 날 나에게 폭행 사건이 왔다. 피고인은 20대 젊은 남자였다. 전과도 없었고 차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절친했던 관계에서의 쌍방폭행 사건이었는데 서로 합의는 되지 않았다. 나는 변론요지서에 양형사유로 적을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폐섬유증과 폐렴이 악화되어 거동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아픈 아버지를 간병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어머니가 계셨지만 작은 음식가게를 하는데 잘되지 않아서 생활이 어려웠다. 피고인은 아버지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 대신 빚도 갚아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막막해했다.


피고인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폐암에 폐섬유증으로 투병하셨지만 돌아가신 직접적인 사인은 폐렴이었다. 피고인 아버지의 상황이 나의 아버지가 폐렴으로 마지막 입원했을 때와 비슷했다. 나는 당시 1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였고, 아버지가 그립고 후회되는 순간이 많아서 무심하게 길을 걷다가도 눈물을 쏟으며 지내던 중이었다. 피고인은 나와 상담한 후 며칠 뒤 아버지가 쓴 탄원서를 들고 왔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키운 자신의 잘못이라며 불쌍한 청춘에게 부디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썼다. 힘이 없었는지 탄원서는 여러 장이었는데 종이 한 장당 글자가 몇 자 들어가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서 쓴 탄원서였다. 피고인은 탄원서를 주면서 아버지가 이제 의식이 혼미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폐섬유증에 폐렴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이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작성한 탄원서를 주고 내 방을 나가는 피고인에게 말했다. "저기... 혹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저한테 좀 알려주실래요?" 피고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재판을 미룬다든가 변호인이 재판에 필요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고 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피고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변호사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그에게 도와줄 어른들이 있는지, 상조에는 가입이 되어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 홀로 상주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버지가 남긴 빚이 많았다.


피고인에게 내가 사용했던 부고 알림 앱을 보내주었다. 피고인은 그 앱으로 나에게 부고를 보내왔다. 보니까 계좌 안내가 안 되어 있었다. 민망해서 적지 않은 것이다. "조문을 오지 못하지만 조의를 표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거예요. 계좌번호를 부고 알림에 남겨도 실례가 아닙니다." 피고인이 계좌번호를 넣어서 숙제 검사받듯이 다시 나에게 부고 알림을 보내왔다. 나는 피고인의 지인 자격으로 나와 남편의 이름으로 2개의 근조화환을 장례식장으로 배달시켰고 조의금을 냈다. "발인하는 날 관을 들 성인 남자 4명이 필요해요." 피고인은 내 말을 듣고 발인 날 새벽에 화장장으로 올 친구 여러 명을 섭외했다. 피고인이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에는 "의외로 사망진단서가 많이 필요해요. 한번 뗄 때 10통은 떼세요"라고 일러두었다.


장례식을 잘 마쳤다고 피고인이 연락 왔을 때 피고인에게 아버지 사망신고, 국민연금, 유족연금, 상속재산조회와 통신사 해지 등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필요한 서류, 양식을 보내주었다. 피고인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 자신을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라는 것을 평생 후회하고 슬퍼할 것이다. 비슷한 처지가 주는 연대감은 공감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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