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등록문화유산 제235호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 <홍준기 기자>
도동항 여객선터미널에서 골목길을 따라 5분 남짓 걸어 올라가자 검게 빛바랜 목조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는 카페와 상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지만 이 건물만큼은 100여 년 전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듯 고요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무심코 지나친다. 하지만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건물을 바라보면 오래된 목재 기둥과 일본식 창호, 세월에 닳은 계단 하나까지 울릉도의 아픈 근현대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이곳은 국가등록문화유산 제235호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이다. 1910년대 일본인 사업가 사카모토 나이지로가 건립한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울릉도 진출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의 풍부한 산림자원과 수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잇따라 이주했고, 이 건물 역시 벌목과 제재업을 하던 일본인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됐다.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홍준기 기자>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다다미방과 손님을 맞던 쇼인즈쿠리 양식, 장식 공간인 도코노마, 비바람을 막기 위한 덧창인 아마도 등 당시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근대 건축사적 가치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울릉 주민들의 삶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해방 이후에는 여관과 개인 주택으로 사용됐으며, 2006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후 복원사업을 거쳐 현재는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로 활용되며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 근현대사를 소개하는 교육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체험센터 문화해설사는 "이 건물은 일본식 건축양식만 보존한 것이 아니라 울릉도의 아픈 역사까지 함께 기록하고 있는 공간"이라며 "학생과 관광객들이 과거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역사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홍준기 기자>
이날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관광객 박상규(52·대구) 씨는 "밖에서는 평범한 오래된 집처럼 보였는데 내부를 둘러보니 울릉도의 역사와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이런 공간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문화유산을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도동항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안내와 홍보가 부족해 존재 자체를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역에서는 울릉도의 대표 근대문화유산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해설 프로그램과 관광 연계가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유산은 화려한 건축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픈 역사까지 온전히 남겨 후세에 전하는 것 또한 문화유산의 중요한 가치다. 도동항 골목 끝에 조용히 서 있는 이 일본식 가옥은 오늘도 100년 전 울릉도의 시간을 품은 채 방문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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