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함께] 안도현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리비로 눈 쓰는 소리’

  •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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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09 19:05  |  발행일 2026-08-10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내게 욕심이 하나 있다면 겨울날 식전에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리비로 눈 쓰는 소리를 이불 속에서 가만히 듣는 것


그 소리는 빈 논의 살얼음을 누군가 맨 먼저 밟고 또 그 뒤를 이어 밟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얗고 아득하였는데


나는 그 소리를 귀에 조금 넣어두고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리비로 눈 쓰는 일은 마당에 없던 연못을 들여놓는 일이고 연못의 수면을 닦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못은커녕 고샅길에 빗자루 지나간 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살았는데


#


안도현의 이번 시집은 유독 일상의 낮은 자리들을 탐하고 있다. 그는 풀을 뽑고 면회를 하고 오랜 서책을 뒤적이지만 그 일과를 바탕으로 화려한 채색에 몰두하거나 공허한 선언에 힘쓰지 않는다. 오히려 시를 하루하루의 화전판으로 끌고 가 대물림하던 이상과 관념의 문서를 태우고 그저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가 으레 시에 기대하는 바 '무언가'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무언가조차 엎질러버림으로써 매 순간 대체할 수 없는 생명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지시된 한계'로부터 언어를 구출해 '감각된 무한'의 세계로 이끈다. 말하자면 안도현은 시를 쓰는 자가 아니라 시라는 거울이 세상을 걸어놓기 위해 박아놓은 못처럼 그 자리에 있다. 날마다 최고치를 갱신하는 수은주의 날씨 속에서 눈 쌓이고 살얼음 낀 아침을 상상하는 일보다 더 큰 책무가 시에게 있을까? 그의 시는 어떤 소박함이 전부인 세계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매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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