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광의 좋은 건축, 좋은 도시] 왜 건물은 많은데 건축은 적은가

  • 김은광 경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학 박사·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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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11 09:18  |  수정 2026-08-11 09:20  |  발행일 2026-08-12
김은광 경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학 박사·건축사

김은광 경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학 박사·건축사

건축가라는 직업은 의외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건물을 설계하고 도면을 그린다고 말하면 대화는 쉬워지지만, 그 순간 건축은 어느새 건물을 짓기 위한 기술로 좁아진다. 일상 대화에서 건축은 종종 설계보다 공사에 가까운 말로 이해된다. 그만큼 건축은 여전히 물리적 건물을 만드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다. 그러나 건축을 그렇게만 이해하면, 건물이 완성된 뒤 그곳에서 어떤 삶이 이어질지는 뒤로 밀려난다.


물론 건축은 건물에서 출발한다. 벽과 지붕, 구조와 설비가 없으면 사람이 머물 수 없다. 도면을 그리고 기능을 배치하며 구조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건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은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물리적 결과물이지만, 건축은 그 안에 사람의 삶과 시간, 장소의 의미가 담길 때 비로소 성립한다. 건물은 삶을 담는 그릇이고, 건축은 그 그릇이 사람의 삶과 도시의 시간 속에서 의미를 얻어가는 일이다.


도시에서 반복되는 여러 문제도 결국 이 차이를 보여준다. 도심에는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과 상가가 남아 있지만, 재택근무와 온라인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예전처럼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거나 물건을 사러 가지 않는다. 전통시장에도 건물과 점포는 남아 있지만, 장을 보고 식사하고 이웃과 마주치던 생활 거점으로서의 역할은 크게 약해졌다. 중소도시에도 폐교와 공공시설, 빈 건물은 남아 있지만, 지역 주민의 일상이나 산업, 관광과 연결되지 못하면 결국 비어 있는 장소로 남는다. 문제는 건물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그 건물을 일상 속에서 계속 찾아야 할 이유가 약해졌다는 데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건물을 새로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건물이 다시 쓰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비어 있으면 허물고 새로 짓고, 낡으면 외관을 고치고, 침체하면 새로운 시설을 더하는 방식은 눈에 보이는 문제를 빠르게 정리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다시 머물게 하지 못한다. 좋은 건축은 변화한 생활을 받아들이고, 장소의 기억을 지우지 않으며,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을 수 있는 이유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건축의 지속가능성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한 건축은 오래 서 있는 건물이 아니라 계속 쓰이는 건축이다. 튼튼한 구조와 재료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지속가능성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의 필요를 받아들이고, 용도를 바꾸며, 주변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의 지속가능성은 물리적 수명보다 사용의 지속성, 기억의 지속성, 삶의 지속성에서 드러난다.


오랜 시간 건축으로 기억되어 온 사례를 보면 이 점은 더 분명해진다. 파르테논 신전은 돌기둥의 집합을 넘어 고대 도시의 신앙과 제도를 담고, 불국사는 한국 불교문화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에펠탑은 철골 구조물을 넘어 근대 기술문명의 상징이 되었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공연장을 넘어 한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건축이 되었다. 이들은 한 시대의 신앙과 제도, 기술과 예술, 도시의 기억과 상징을 함께 담고 있다. 단지 오래 남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해석되고 기억되며 새로운 의미를 얻어 왔기 때문에 건축으로 남는다.


결국 건물이 많아도 건축이 적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지을 것인가에는 익숙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쓰이고 어떤 삶을 지속시킬 것인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건물은 완공되는 순간 하나의 결과물이 되지만, 건축은 그 안에서 사람이 살아가고 시간이 쌓일 때 시작된다. 좋은 건축, 좋은 도시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 질문을 계속 붙들 때, 비로소 건물은 건축이 되고 도시는 사람의 일상이 쌓이는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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