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김수영 시인은 시 못지않게 산문도 잘 썼다. 그가 1961년에 발표한 산문 중에는 '흰옷'이란 제목의 글이 있다. 길지 않은 그 글에서 시인은 흰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한 내용을 절반의 분량으로 다룬다. 김수영이 보기에 당시 흰옷을 입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여전히 흰옷을 입었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도 농사를 짓고 술도 마시고 낚시질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옷에 때가 타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수영은 그들이 흰옷을 입는 방법을 잘 알고 그 양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문제는 그들의 다음 세대인 우리들이다. 우리들한테는 옷이 없다. 양복? 우리의 옷이 아니다. 모르지, 장차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의 옷이 못되고 있다. 말하자면 양복은 우리들의 친근한 작업복도 못되고 자랑스러운 호사도 못된다. 말하자면 우리들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소화되어 있지 않다."
공식석상에 주로 양복을 입는 문화를 생각해보면 김수영이 저 글을 쓴지 60년이 넘은 지금 양복은 우리의 옷이 된 듯도 하다. 그러나 문장을 적자마자 정말 그러한가란 생각이 동시에 든다. 아마도 이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많이 거론되는 요즘의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것'을 말하는 일이 얼마나 낡고 촌스러운가, 또는 과연 '우리 것'이라는 게 있기는 하나와 같은 회의주의적 시선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 까마득하다. K팝, K필름, K문학, 이른바 K컬처의 기세가 꾸준히 상승세이다. 김수영이 '흰옷'에서 이야기한 바처럼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향유하는 법을 잘 알고 그 양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있을까.
문학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외국에서 K문학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커졌고 번역된 K문학작품의 수상 소식은 빈번해졌다. 하지만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문학 작품의 향유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대단한 인파가 몰린다고 하지만 거기에 온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도서전의 책보다 굿즈이고, 도서전 같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책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독서가 특별한 이유는 책 안에 상당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 힘과 접속하는 일은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서 자체가 읽는 사람에게도 힘을 요구한다. 책 속에 응축된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독서 주체도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는 말은 개개인의 에너지는 물론 사회 전반의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몰려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에너지를 시간이란 말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저 힘의 향방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어디에 쏟고 살고 있나? 우리는 일주일에 책을 읽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단순히 책 읽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책망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에너지와 사회적 에너지를 분배하고 구조화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자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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