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라 소설가
종종 책을 읽다가 같은 문장을 두 번 읽을 때가 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장이 아니더라도 눈은 다음 줄로 넘어가지 않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한동안 그곳에 머문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우리는 책을 읽을 때조차 앞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페이지를 읽었는지, 몇 권을 읽었는지 세며 빨리 읽는 능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읽는 일'은 속도의 의미와 잘 맞지 않는다.
책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인물이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뿐인 페이지. 큰 틀을 따라가자면 건너뛰어도 될 장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런 곳에서 멈춘다.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멈춰 있는 순간, 독서는 비로소 그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책은 정해진 페이지가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300페이지의 소설을 반나절 만에 읽고 누군가는 일주일이 걸려 읽는다. 또한 같은 사람에게도 책마다 다른 속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차이가 이해력에서 생기는 것인가.
아니다. 문장이 우리의 삶과 부딪히는 순간에는 분명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독서에는 조금 이상한 시간의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졸업하고 취직하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또 다음 목표를 세우며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고 배운다. 저 사람은 벌써 나를 앞서갔는데 나는 왜 아직 여기인지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는 페이지가 없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이야기가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책에서만큼은 한 문장 앞에서 기꺼이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삶에서 기꺼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는 낭비라 칭한다.
당장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 숨 가쁘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직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문장을 그대로 품은 채 살아도 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속도라면, 그렇다면 삶의 어느 순간에도 기꺼이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떤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하루도,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관계가 있어도 된다. 우리가 서둘러 다음 장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에게는 아직 읽지 못한, 놓쳐버린 장면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조금 늦게 읽어도 좋겠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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