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다, 경주의 동해③] 지구가 만든 파도 한 줄

  • 이지용·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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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0 18:31  |  발행일 2026-08-21
신라 천년 넘어 2천만년의 시간…1.7km 해안길에 핀 ‘검은 바위꽃’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해안을 따라 검은 주상절리와 푸른 동해가 맞닿아 있다. 파도가 밀려들고 빠져나갈 때마다 수직으로 서거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돌기둥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해안을 따라 검은 주상절리와 푸른 동해가 맞닿아 있다. 파도가 밀려들고 빠져나갈 때마다 수직으로 서거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돌기둥이 모습을 드러낸다.

독특한 모양 특징인 '양남 주상절리'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

용암 흐른 방향·옛 지형 그대로 간직

수직·수평·부채꼴형태 한 곳서 관찰

읍천항~하서항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해안 굴곡 따라 걷는 1.7km 지질여행

전망대에서 보이는 검은 돌기둥에 감탄

경주에서 천년은 그리 오래된 시간이 아니다.


왕릉과 절터, 탑과 불상이 천년의 시간을 말하는 도시. 그러나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바다를 따라 몇 걸음 옮기면 시간의 눈금은 전혀 달라진다. 신라보다 오래되고 인간의 역사보다 깊은 약 2천만 년 전 지구의 시간이 해안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1.7㎞의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길 한쪽에서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고, 검은 돌기둥은 바다를 향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곧게 선 것과 옆으로 누운 것, 비스듬히 기울어진 것, 한 점에서 부채처럼 퍼져나간 것. 바위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한때 이곳을 흘렀던 불의 방향이 남아 있다.


길 입구에서 조종철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 해설사를 만났다. 2014년부터 이곳의 바위를 설명해온 사람이다. 그가 검은 해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됐다고 하니까 여기서 평생을 살던 어부들이 다들 눈이 동그래졌어요. 만날 보던, 그냥 바위인데 이게 엄청난 거였다고? 모르고 보면 지금도 그냥 바위예요. 그런데 그 바위에, 지구가 지나온 시간이 새겨져 있는 거죠."


양남의 바다는 경주의 시간에 또 하나의 층위를 연다. 이제부터 걸어갈 길은 1.7㎞의 해안길이자 약 2천만 년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의 길이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양남 주상절리를 포함한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2025년 4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양남 주상절리를 포함한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2025년 4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주상은 기둥 모양이라는 뜻이고, 절리는 암석에 생긴 갈라진 틈을 말한다. 양남 해안의 주상절리는 약 2천만 년 전 분출한 현무암에 새겨진 흔적이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주상'은 기둥 모양이라는 뜻이고, '절리'는 암석에 생긴 갈라진 틈을 말한다. 양남 해안의 주상절리는 약 2천만 년 전 분출한 현무암에 새겨진 흔적이다.

◆불은 어떻게 돌기둥이 되었나


"''주상'은 기둥 모양이라는 뜻이고, '절리'는 암석에 생긴 갈라진 틈을 말합니다." 그는 손가락 두어 개를 모아 하나의 굵은 기둥을 만들더니 손가락 사이를 벌려 보였다. 어려운 지질 용어가 손바닥 위에서 모양을 얻었다. 주상절리는 암석의 성분이 아니라 생김새를 보고 붙인 이름이다. 기둥처럼 생긴 바위에 갈라진 틈이 발달한 지질 구조. 그래서 정확히 말하려면 어떤 암석에 생긴 주상절리인지 함께 살펴야 한다. 양남 해안의 주상절리는 약 2천만 년 전 분출한 현무암에 새겨진 흔적이다.


"지상으로 나온 용암의 온도가 1천℃ 안팎입니다. 용광로 속 쇳물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바깥 공기와 땅은 그에 비하면 아주 차갑잖아요.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고 수축하면서 쩍쩍 갈라지는 겁니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는 수직으로 선 모습이다. 그러나 양남의 해안에서는 위로 솟은 것뿐 아니라 옆으로 누운 것, 비스듬히 기울어진 것, 부채처럼 펼쳐진 것까지 만날 수 있다. 용암은 평평한 땅만 흐르지 않았다. 비탈을 타고 내려가기도 하고 골짜기를 지나기도 했으며 낮은 곳에 고이기도 했다. 용암이 만난 옛 지형과 식어간 방향이 달라질 때 돌기둥의 방향도 달라졌다.


"먼저 흘러나온 용암은 뒤에서 계속 밀려오는 용암 때문에 앞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평평할 수도 있고 비탈이나 골짜기일 수도 있지요. 용암은 그 지형을 따라 흐르고, 놓인 자리에서 식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지형이 바위의 방향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눕거나 곧게 선 바위는 용암이 흐르던 순간을 간직한 '멈춘 움직임'이었다. 양남 주상절리군의 가장 큰 가치는 그 다양성에 있다. 수직·수평·경사·방사상으로 발달한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를 한 곳에서 함께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물고 특히 수많은 돌기둥이 한 점에서 여러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형태다.


경주에서는 양남 주상절리를 비롯해 남산 화강암, 골굴암, 문무대왕릉이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의 지질명소에 포함돼 있다. 포항·경주·영덕·울진을 아우르는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은 2025년 4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신라 사람들이 불상과 탑을 새긴 남산의 화강암, 화산 분출물이 쌓여 굳은 골굴암의 응회암, 양남 해안의 현무암은 한 도시 안에서도 서로 다른 지구의 시간을 보여준다.


바위는 말이 없지만 누운 방향으로 용암의 길을 가리키고, 갈라진 틈으로 식어간 시간을 기록한다. 물이 아니라 불이 만든 파도, 지구가 자기 몸에 새긴 파도였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시작된다. 읍천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양남면 어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시작된다. 읍천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양남면 어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항구의 시간, 파도의 길


그 바위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읍천항에서 시작된다. 흰 등대와 붉은 등대가 방파제 양끝에 서 있고, 작은 어선들은 잔물결 위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항구 바닥에는 자갈로 만든 파도 무늬가 등대를 향해 길게 이어졌다. 바다의 파도가 뭍으로 올라와 길이 된 듯했다.


읍천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양남면 어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나 국가어항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바다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다. 항구가 개발되기 전에는 바다와 마을 사이가 불과 몇 걸음이었다고 한다. 파도가 높은 날이면 물이 집 가까이까지 밀려들었고, 태풍이 닥치면 주민들은 마을 뒷산으로 몸을 피했다. 농사지을 땅이 넉넉하지 않아 많은 주민이 작은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물질로 멍게와 전복을 따고, 돛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바다는 이곳 사람들에게 풍경이기 전에 밥이었다. 방파제가 놓이고 중대형 어선이 정박할 수 있게 되면서 항구의 삶도 달라졌다. 수협 위판이 활기를 띠었고 판로가 넓어졌다. 지금도 읍천의 배들은 철마다 어종을 달리하며 바다로 나간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약 1.7㎞ 이어진다. 해안의 굴곡을 따라 놓인 데크와 흙길, 출렁다리를 걸으며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약 1.7㎞ 이어진다. 해안의 굴곡을 따라 놓인 데크와 흙길, 출렁다리를 걸으며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경주 주상절리 부근 파도소리길 출렁다리.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경주 주상절리 부근 파도소리길 출렁다리.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잇는 해파랑길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데크와 흙길, 짧은 출렁다리가 해안의 굴곡을 따라 이어진다. 빠르게 걸으면 길지 않은 거리지만 이 길에서는 자꾸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름은 '파도소리길'이다. 무엇을 보라는 말보다 먼저 무엇을 들으라는 이름이다. 파도는 바위 아래에서 한 번은 낮고 둔하게, 한 번은 자갈을 끌어당기며 길게 울렸다. 물이 물러날 때마다 돌과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길의 굴곡에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파도 소리가 해안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악기로 만들었다.


데크 난간 너머로 검은 바위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파도가 덮으면 그저 바다였고 물이 빠지면 수많은 돌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게 선 주상절리, 옆으로 누운 주상절리, 비스듬히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운 돌기둥에서는 용암이 지나간 낮은 길이, 기울어진 절리에서는 사라진 비탈이 떠올랐다.


출렁다리에 오르자 발밑이 가볍게 흔들렸다. 아래에서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흰 물보라로 흩어졌다. 난간 너머로 내려다본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걷는 사람들은 말수가 줄었다. 파도 소리가 커질수록 사람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1.7㎞라는 거리는 지도 위에서는 짧지만 그 길에 놓인 시간은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길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길. 뜨거운 용암이 흘러간 길, 식으며 갈라진 길, 그 틈을 따라 파도가 드나든 길. 해안을 따라가던 길은 조금씩 높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부채를 펼친 듯한 바위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파도소리길 중간에 자리한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 전망대에 오르면 수직·수평·경사·방사상으로 발달한 주상절리군과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실내에선 주상절리를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도 감상할 수 있다.

파도소리길 중간에 자리한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 전망대에 오르면 수직·수평·경사·방사상으로 발달한 주상절리군과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실내에선 주상절리를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시간


파도소리길 중간 즈음, 둥근 갓을 쓴 듯한 전망대가 바다를 향해 서 있다. 2017년 10월 문을 연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다. 낮은 해안에서는 파도에 씻기는 검은 바위였던 것들이 높은 곳에서는 저마다 다른 방향을 지닌 돌기둥의 무리로 모습을 바꾼다.


전망대는 바깥 풍경만 보기 위한 망루가 아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수천만 년의 시간이 몇 분으로 압축된다. 미디어아트의 대형 화면에서 마그마가 솟구치고 용암이 흐르고, 식고 갈라져 돌기둥이 된다. 계단을 따라서는 계절과 빛을 달리한 경주 바다의 사진이 이어진다. 위층의 전시 자료는 주상절리의 생성 과정과 여러 형태, 경북 동해안의 지질명소를 설명한다.


그러나 전망대의 주인공은 역시 해안의 부채꼴 주상절리다. 수많은 돌기둥이 한 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 있다. 바다 위에 거대한 부채를 펼쳐놓은 듯하고 검은 꽃이 물가에서 피어나는 듯도 하다. 그 곁에는 기울어진 주상절리와 누운 주상절리, 위로 선 주상절리가 잇따른다. 조 해설사가 이곳을 '주상절리의 박물관'이라고 부른 까닭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양남 주상절리군을 대표하는 부채꼴 주상절리. 돌기둥이 한 지점에서 여러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희귀한 형태이다. 양남 주상절리군은 2012년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됐다. <영남일보DB>

양남 주상절리군을 대표하는 부채꼴 주상절리. 돌기둥이 한 지점에서 여러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희귀한 형태이다. 양남 주상절리군은 2012년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됐다. <영남일보DB>

"세계 여러 곳의 주상절리는 규모가 크고 웅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한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주상절리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습니다." 전망대 유리창 너머로 동해가 넓게 열렸다. 그 사이에 주상절리가 한 줄 놓였다. 신라가 남긴 어떤 석축보다 먼저 만들어진 선이었다. 전망대 창 앞에 오래 서 있었던 탓일까. 눈앞의 존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지나온 뜨거움과 식어감, 갈라짐의 시간을 나도 모르게 헤아렸다.


돌아오는 길, 해안의 검은 바위는 더 이상 그냥 바위가 아니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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