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시간이 빠르다. 다들 자주 쓰는 말이라 다르게 써보고 싶다. 시간은 늘 나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잡을 수가 없다. 멀리 가나 옆에 있나 시간은 잡을 수 없으니 탈락이다. 시간이랑 붙어봤는데 고작 인간의 맷집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인간이랑 붙어보려고 시간이 링 위에 올라오지 않을 테니 애매하다.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이야기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시간과 겸상하면 내가 한술 뜰 동안 시간은 밥그릇을 다 비우고 밥솥에서 밥을 더 푸고 있다. 어설프다.
이쯤 궁리하니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왜 자주 쓰는지 알겠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시간이 빠르다는 말 말고는 대체가 안 된다. 시간이 빨라서 벌써 구월이다. 처서는 진작 지났다. 백로를 앞둔 시점에도 더위는 시간을 못 따라잡는지 늑장을 피우며 기승을 부린다. 그래도 한 해의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임은 분명하다. 올해 세웠던 목표를 달성할지 확신할 수는 없더라도 짐작해볼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내가 세운 목표는 '백 번 달리기'. 백 번이라고 떡하니 적어놓으니 큰 숫자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목표를 제법 느슨하게 잡았다. 달리는 거리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1㎞나 10㎞ 모두 똑같은 한 번으로 계산했다. 팔월까지 80번 정도를 달렸으니 아마 큰 어려움 없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듯하다. 작년에는 아슬아슬하게 백 번을 채웠는데 올해는 제법 여유롭다. 몸에는 큰 변화가 없어서 조금 아쉽더라도,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못하던 내가 달리기만은 꾸준하게 하고 있으니 정신적으로는 만족스럽다.
매일 달리는 사람들이 보면 내 목표는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밥상에 놓인 무생채처럼 소박하게 보일 테다. 반면 올해 여러 이유로 달리지 못한 사람은 내 목표가 800장이 훌쩍 넘어가는 책을 완독하는 일처럼 대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9월쯤 되었으니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다른 사람이 어찌 바라볼지 걱정하기보다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점검해봐도 좋지 않을까.
점검하기 전에 여기까지 읽어주신 감사한 분들과는 축배를 들고 싶다. 무엇을 위한 축배인지는 속으로 되뇌더라도 환호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축배. 나는 이 글을 읽기 위해 시간을 써준 당신을 위해 축배를 들고 싶다. 이런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이를까? 시간이 빠르다. 축배는 여러 번 들 수 있지만, 들었다가 놓을 수도 있고 냅다 마셔버릴 수도 있지만, 시간은 빠르다. 돌아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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