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인
옥상에서 바람을 만지던 시간, 모두 비슷한 맛의 눈물을 흘린 시간. 길고 맑은 살의 우산을 펴고 바람은 누나의 물 빠진 치마와 놀았다. 포플러가 그린 난곡의 악보 덕에 노래들은 하수처리장으로 떠가는 빨간 실지렁이들과 긴 여름을 함께 했다. 햇포도처럼 어젯밤이 무겁게 열리면 달은 자라던 것을 멈추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간다. 동생이 줄긋기 연습을 하던 시간, 팔뚝에 붉은 줄을 긋고 조용히 울던 시간. 내가 아는 모든 바람은 자기를 일으켜 세울 먼지 몇 줌을 쥐고 태어났었다. 난 단지 잡았던 끝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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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어떤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시간은 "햇포도처럼 어젯밤이 무겁게 열리면 달은 자라던 것을 멈추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햇포도처럼 열린 어젯밤 때문에, 달은 자라지 못한다.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 어젯밤의 햇포도로 무겁게 자라는 일. 결국 이들의 놀이는 죽음을 연습하는 반복적 과정 혹은 죽음과 진배없는 시간을 살고 있는 어떤 기억의 원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돌아오는 '저녁'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저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돌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비극적인 유희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먼지가 인다'는 말 못지않게 '먼지가 된다'는 말도 관용적이다. 다시 말해, 먼지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투사되는 사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읽는다면 우리는 이미 그 마지막을 알고 있는 자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 과정에 대한 비의에 다가갈 수 있다. 더불어 모든 술어가 과거형이라는 점에서, 바람이 일으키는 먼지의 순간이 자신들이 공유한 운명이자 자신들의 기원이라는 것을, 현재의 화자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 또한 가능하다. 매일 찾아오는 회한과 슬픔과 쓸쓸함과 서글픔의 저녁을 가득 메운 바로 그 기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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