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제가 던진 말에 올가미가 걸린 일화로 제정 러시아 시인 릴레예프가 자주 인용된다. 반란죄로 교수형이 선고된 그는 형 집행 중 밧줄이 끊어져 목숨을 건지자 "이 나라는 교수대 밧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라고 비아냥댔다. 당시 형 집행 실패는 신의 섭리로 여겨 사면해 주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황제는 사면 대신 '제대로 된 밧줄'부터 만들라고 명했고, 그는 다시 교수대에 서는 신세가 됐다.
# 86주 연속 상승한 서울 집값
말이 씨가 되느니, 내가 던진 말이 나에게 돌아와 상처를 주는 부메랑 현상이 요즘 정치판에 심심찮게 나타난다. 당장 이재명 대통령부터 어설픈 언행으로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그는 연초 "부동산(시장) 정상화는 어려운 일이지만 계곡 불법시설 정비나, 주식시장 정상화보다는 쉬운 일"이라고 호기로운 표현을 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지방선거 후 속절없이 미끄러지는 지지율 추락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부동산 대처 미흡'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무려 86주 연속으로 상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람들은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 안 하겠다'더니, 언제부턴가 '다주택자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등 세제 강경 기조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도 문제"라며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든가"라고 혀를 찬다.
국무회의 발언 역시 논란이 됐다. 이 대통령은 재경부 장관에게 "세금 만지는 사람은 세제를 바꾸면 반드시 욕먹게 돼 있다"라며 "바꿔서 혜택 보는 쪽은 가만히 있고, 부담이 느는 쪽은 반감을 보이니 무조건 기어서 다니"라고 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야당은 즉각 "정작 국민 앞에 엎드리고 기어서 다닐 사람이 누군데 휘하 장관에게 돌리느냐"고 받아쳤다. 평소 언행에 대한 되치기인 셈이다.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들도 심각한 부메랑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나긴 했으나 용혜인 의원은 여가부 장관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겸직을 시도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어느 장관에게 "직에 연연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럽다"라고 비꼬았던 제 말대로 장관직 바로 코앞에서 물러서야만 했다. 그렇다고 '내로남불' 특혜, 막말 정치의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다.
# 올무로 돌아온 '기생충 정당'
그는 6년 전 "기생충 정당 양산하는 국고보조금 폐지하고 정치 기본소득 도입하자"란 주장을 편 바 있다. 그가 장관직은 던지고 의원직을 택한 건 소속 기본소득당이 국고보조금 혜택을 계속 받기 위해서란 뒷말이 이어진다. '기생충' 표현이 올무가 된 탓이다. 자신은 '위성 정당'으로 당선되고, 소속당도 '가족 정당'처럼 운영하면서 타 정당은 '기생충'에 빗댄 게 끝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꽂힌 도돌이표도 심상치 않다. 판사 출신인 그는 윤석열 내란재판 1심을 맡았던 지귀연 판사의 술자리 접대 파문이 일자 한 방송에 나가 "판사도 아니다. 교체해야 한다"라고 강력히 비판했었다. 그런데 장관 지명 직후에 터져 나온 본인의 술자리 의혹은 지 판사의 그걸 훨씬 뛰어넘었다. 자신이 관계된 사건의 관련 판사와 여성 브로커 등 3인이 나란히 웃으며 찍은 사진이 노출됐고 녹취록까지 터지면서 의혹은 일파만파 커졌다.
우군일 법한 시민단체나 진보 정당 등에서도 코로나19 신약 청탁 및 브로커 연루 의혹은 물론 음주운전 전과에 온갖 가족 특혜 의혹을 들먹이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김 후보자의 의혹들을 앞장서서 폭로한 한동훈 의원은 여기 더해 '오빠 독약 로비'라는 선정적 제목을 붙여 공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신약을 독약, 김 후보자와 브로커를 '오빠 동생'의 은밀한 관계로 설정해 야릇한 흥미를 돋운다.
오늘 시작하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한 의원은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오빠 로비 괜찮으시냐?'라는 SNS 글도 올렸다. "만약 자기 남편이나 가족이 룸살롱 여동생 브로커에게 오빠 소리 듣고 '눈물 나게 보고 싶다'라며 몰래 만나고, 심지어 자택까지 가서 만나고, 환심 사려 불법 로비해 줬다면 괜찮겠는지 묻겠다"라고 했다. 신파조에 관음적이지만 구실 준 행동이 실제 맞는다면 원칙과 정의를 다루는 법무 행정의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 한동훈 폭로에 사활 건 전쟁
물론 민주당은 로비 자체를 부인한다. 되레 그의 장관 지명은 "보면 볼수록 잘한 인사"(김민석 당 대표)라며 "끝까지 지키겠다"란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 의원이 '야릇한 정황' 폭로를 이어가는 데 대해서는 "검찰 캐비닛에 있어야 할 수사 서류가 어떻게 한 의원에게 흘러갔는지 수사하자"라는 입장이다. 수사 자료의 불법 취득과 폭로는 바로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실증하는 것이란 주장도 한다.
민주당은 한 의원이 검사 시절 압수당한 핸드폰에 20자리 비밀번호를 설정해 풀지 못하게 한 과거도 소환했다. 그러면서 아예 "선정적 폭로를 서슴지 않는 한 의원을 국회에서 아웃(out)"시키겠다는 으름장까지 놓는다. 지금까지 청문회에 나서는 후보자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고 국회의원을 제명한 역사는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마치 전쟁이나 벌이듯 흥분하는 이유는 만약 그마저 낙마하면 국정 운영의 둑이 한꺼번에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측면이 크다.
요즘 떠오르는 경제 용어에 '자기 과신의 함정(over-confidence trap)'이라는 게 있다. 제 예측이나 실행, 판단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잘못된 예단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능력과 판단을 과대평가해 위험은 과소평가하는 것인데 주로 전문가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고돼 있다. 자기 과신에 빠진 이들은 저만 옳다고 느껴 새 정보에 소홀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지금 온갖 말과 행동의 부메랑을 던지는 이들은 혹시 자신이 자기 과신의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진짜 희생자는 '진실'
일찍이 정치를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에 비유한 것은 마오쩌둥이다.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라고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결정해 주지 않으며 다만 누가 살아남는지만 결정할 뿐(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사실이다. 싸우는 정치건 전쟁이건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청문회를 둘러싼 지금, 피만 흘리지 않을 뿐 거의 사활을 건 여야 전쟁이 또 어떤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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