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 학습·동료평가 바탕으로
AI·클라우드 등 SW 엔지니어 양성
月100만원 지원하며 중도이탈 막아
취업·창업지원으로 청년정착 유도
K보듬·산후조리비 등 돌봄여건 개선
지역정주형 취창업 생태계 조성 목표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는 교수·교재·학비가 없는 이른바 '3무(無) 교육'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42경산' 과정을 운영한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 에디슨룸에서 42경산 교육생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경산은 명실상부한 '대학의 도시'다. 젊음이 살아있고 그 활력이 도시를 넘나든다. 단순히 그 사실만이 경산을 젊고 활력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대학과 새로운 배움의 현장이 경산에 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삶을, 도시와 사회를 순환시킨다.
경산시는 경산에서 배우고 일하고 그리고 경산에서 자리를 잡는 구조를 조성하고 있다. 인재와 가족, 경산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남긴다.
◆교수도, 교재도, 학비도 없는 학교
대학의 도시 경산에 또 다른 학교가 있다. 바로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는 교수가 없고, 교재가 없고, 학비가 없는 이른바 '3무(無) 교육'을 운영한다. 이 과정은 AI와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과정인 '42경산'이다. 프랑스 IT 기업가 자비에 니엘 회장이 소프트웨어 고급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세운 '에꼴42'의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왔다.
대구대 창파도서관에 자리한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는 2023년 11월13일 문을 열었다. 이곳의 강의실에서는 시험지도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니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고, 정해진 교재가 없으니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곧 교재가 된다. 막힌 문제를 들고 가는 곳이 교수 연구실이 아니라 동료의 모니터 앞이라는 얘기다. 자기주도 학습과 동료 학습, 동료 평가가 이 학교를 굴리는 유일한 동력이다.
문은 넓게 열려 있다. 컴퓨터공학 전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상시 모집으로 시작해 온라인 신청과 온라인 테스트, 본인 확인을 거치면 한 달간의 집중 교육에 들어간다. 교육생들이 '라피신(Piscine·수영장)'이라 부르는 4주짜리 오프라인 과정이다. 물에 던져 놓고 헤엄치게 한다는 뜻의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프로그래밍과 네트워크 인프라 등이 포함된 본교육이 시작된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교육생 유제민씨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서 우연히 프로그래밍 강의를 듣다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갖고 스스로 소질이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유씨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비전공자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성장시켜줄 곳을 찾다 42경산에 입교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42경산을 두고 "자습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배우고 동료들을 가르쳐주는 시스템"이라며 "동료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분명히 있고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커리큘럼 속에서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과제의 난이도가 높으니 공부량도 많고 당연히 전문적인 수준에 오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씨는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가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최근에는 워싱턴 기술산업협회(WTIA)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유씨는 "다양한 참여·견학 프로그램을 42경산과 함께 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42경산 교육생 생활을 마치고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로 취업한 사례도 있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 사업운영실 김재훈 선임이다. 그는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과 42경산을 병행했다. 그는 데이터과학을 연구하면서 시너지 창출을 위해 프로그래밍을 학습하는 42경산에 입교했다.
김 선임은 "42경산의 커리큘럼은 컴퓨터의 근본부터 심화과정까지 체계적으로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코딩·프로그래밍 부트캠프(교육기관)는 취업에 필요한 내용만 단기간에 배우는 경우가 많다. 42경산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단계를 쌓아가며 학습하기 때문에 오히려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 그리고 그 과정까지 모두 겪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42경산'은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AI와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양성 교육과정이다. 1개월 과정을 수료하면 1인당 월 100만원의 학비가 지급되며, 최대 2년까지 이어진다.
42경산 과정에서는 학비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다. 1개월 과정을 수료하면 1인당 월 100만원의 학비가 지급되며, 최대 2년까지 이어진다. 2년을 꼬박 채우면 2천400만원이다. 기숙사가 제공되고 자율휴학 제도가 있어 사정이 생기면 잠시 학업을 멈췄다 돌아올 수도 있다. 상시 학습 모니터링과 상담이 붙어 중도 이탈을 막는다. 배움을 포기하는 이유의 상당수가 실력이 아니라 생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 설계다. 배우는 동안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 둔 셈이다. 성적이 우수한 교육생에게는 글로벌 연수 프로그램의 문도 열린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인공지능(AI)과 데이터,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인재 확보는 국가 단위의 과제가 됐다.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자 소프트웨어·AI 인력 수요는 급증했지만, 산업 현장이 원하는 인재와 학교가 길러낸 인재 사이의 간극은 여전하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가 기업연계 프로젝트 과제 수행과 협약기업 인턴십, 취업 컨설팅과 산업 현장 네트워크를 교육과정 안에 끌어들인 이유다. 배움이 곧 경력이 되고, 경력이 곧 정착이 되는 '지역 정주형 취·창업 생태계'를 겨냥한 장기 포석이다.
경산이노베이션아카데미는 기업연계 프로젝트 과제 수행과 협약기업 인턴십, 취업 컨설팅과 산업 현장 네트워크를 교육과정 안에 끌어들여 '지역 정주형 취·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배운 청년을 붙잡는 두 개의 손
인재를 길러내도 일자리가 없으면 도시는 그들을 잃는다. 경산시가 올해 두 갈래로 손을 뻗은 이유다.
먼저 취업지원센터 활성화 사업이다. 2028년 12월에 경안로 223번지 1층, 경산상공회의소 건물에서 문을 열 계획이다. 운영은 경산상공회의소가 맡는다. 구인업체를 직접 발굴해 일자리 데이터베이스를 쌓고, 구직자에게는 계층별 맞춤형 상담과 알선을 제공한다. 특강과 박람회 같은 취업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지역 현황을 반영한 일자리 발굴로 '지역 주도의 일자리 해결'을 하겠다는 것이 사업의 방향이다. 여기에 경산 소재 대학에 재학·휴학 중이거나 졸업한 미취업 청년을 위한 취업캠프, 인사담당자 초청 특강, 취업증명사진 지원 같은 실무형 지원이 붙는다.
다른 하나는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 청년을 향한다. 청년도약 지원사업은 3월부터 12월까지 19세 이상 39세 이하의 예비창업자와 창업 1년 이내 창업자 13개 팀을 지원한다. 기술창업과 지식창업은 물론 농업과 연계한 6차산업까지 분야를 넓혔다. 상품화 제작비와 시장개척 홍보비 등 창업활동비를 대고 창업교육과 전문가 컨설팅, 1대 1 개별 상담을 함께 제공한다. 대학의 도시라는 자산을 정착의 지렛대로 쓰겠다는 구상이다.
2025년 경산시의 출생아는 1천352명으로 전년보다 10.5% 더 늘었다. 경산시는 돌봄 정책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다. 다 함께 돌봄 시설인 'K보듬 6000' 경북 제1호점인 하양 우미린에코포레 어린이집을 방문한 조현일 시장. <경산시 제공>
◆낳고 기르는 일을 도시가 함께한다
경산시는 2021년부터 3년 연속 출생아 수가 줄었다. 그러다 2024년 반등에 성공했고, 2025년에도 흐름을 이었다. 주민등록 기준 2025년 출생등록자 수는 1천352명. 전년 1천224명보다 10.5%인 128명 늘었다. 합계출산율도 2024년 0.85명에서 2025년 0.95명으로 올라섰다.
돌봄의 망도 촘촘해지고 있다. 아이누리 장난감도서관은 서부2동과 하양읍에 이어 남천면 대명길 80, 옛 시립남천어린이집에 세 번째로 마련됐다. 눈에 띄는 점은 방문 대여와 무료 배달 서비스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 가정과 24개월 미만 두 자녀 이상 가정에는 장난감이 집으로 찾아간다.
출산 직후의 부담도 도시가 나눠 진다. '행복 출산·건강한 가정' 산후조리비 지원 사업은 경산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출생 신고를 한 가정에 최대 100만원을 지원한다. 출생일로부터 6개월 이내의 진료비와 약제비, 산후조리비가 대상이며 올해 1천200가구가 목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K보듬 6000' 사업에서 나타났다. 2024년 7월 시작해 상시 운영 중인 이 사업은 어린이집 3곳, 다함께돌봄센터 2곳, 지역아동센터 1곳, 공동육아나눔터 1곳 등 7개 시설에서 6개월 영아부터 초등학생까지를 무료로 돌본다. 예약만 하면 평일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이 열려 있다. 사전 신청하면 자정까지도 가능하다. 2025년 한해 이용 인원은 1만2천94명이었다.
2025년 백일해 무료 예방접종과 산부인과·소아과 원아워(ONE-hour) 진료체계, 20대 결혼 축하 혼수비용 지원은 올해 휴일지킴이 약국과 다자녀가정 이사비 지원, 우리동네 초등방학돌봄터, 임산부 콜택시로 이어졌다. 생애주기를 따라 정책을 촘촘히 넣는 방식이다.
글=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박준상
대구와 갱상북도의 이바구
이지용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 전문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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