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윤 독립출판사 리와인드 대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쓴다고 말할 때 '다른 사람들'에 '나'도 들어간다. 나는 자주 '나'를 들여다보려고 시간과 힘을 들인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싫어한다면 왜 그런 건지, 지금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혀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서 왜 종종 후회하는지 파악해 보려 한다. 주로 물음으로 이뤄지고, 이어지는 들여다보기는 결국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나는 그걸 위로라고 부른다. 위로는 물에 둥둥 떠다니는 일만큼 좋고, 물살을 가르고 목표한 지점으로 가는 직언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위로가 좋고, 이런 위로가 삶의 본질이나 생의 자질구레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심하고 별 탈 없이 던지는 위로가 좋다.
골머리 앓게 만드는 일들은 꾸준하게 일어난다. 나라도 '나'를 위해 그 일들을 줄여줘야 한다고 체감할 때 나는 나를 위로한다. 더 고양되고 향상하는 날들로 삶을 조각하는 시간도 있어야겠지만, 가끔은 삶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 어떤 모양새로 조각이 되어가고 있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순간들이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긴다. 위로는 판단하지 않는다. 위로는 숨기지 않으며 부서지지도 않는다. 위로는 밤에 정성스럽게 만든 눈사람 같고, 아침이 와 서서히 녹으며 눈과 눈이 엉겨 붙으며 더욱 단단해지는 빙판 같기도 하다. 위로에 속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설령 '나'를 속이기 위해 위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위로를 지나온 뒤에 더 성숙해질 수 있을 테니까. 위로는 굳이 정교할 필요가 없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겹겹이 껴입은 의무와 행동들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위로 앞에서는 벗어던져도 된다. 위로는 완전한 이해 없이도 가능하니까.
위로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도 없다. 오히려 위로가 더 부끄러워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위로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 위로를 숨기지 말자. 위로를 굶기지도, 방치하지도. 언젠가 나의 몸을 내가 끌어안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연해도 인간의 몸은 자신의 몸을 전부 끌어안을 수 없다. 잔뜩 웅크린다고 해도 삐져나온 발과 무릎은 점점 차가워진다. 그럴 때도 위로가 필요하다.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고 있다 보면 다른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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