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장 발언대] “마을이 저를 키웠으니, 이젠 제가 돌봐야죠”…박기혁 봉화 춘양 의양1리 이장의 ‘젊은 농촌론’

  •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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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19 14:26  |  발행일 2026-09-19
봉화 최연소 이장으로 7년째 마을 살림…경로당 찾아가는 ‘현장형 소통’
LPG배관망 주민 설득·의용소방대·방범대 활동…“농촌은 청년에게 기회의 땅”
박기혁 봉화 춘양 의양1리 이장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바로 그렇게 자랐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저를 키워주셨으니 이제는 제가 어르신들을 돌봐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봉화군 춘양면 의양1리 박기혁 이장<사진>. 1977년생으로 봉화군에서 가장 젊은 이장인 그는 '이장'을 직책보다 자신을 키워준 고향에 빚을 갚는 자리라고 말한다.


의양1리에서 태어나 골목골목을 누비며 자란 그는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어떤 어르신에게 도움이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안다. 고령화된 마을에 젊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권유로 이장을 맡은 지 올해로 7년째다.


막상 이장이 되고 보니 책임은 예상보다 무거웠다. 행정사항 전달과 각종 사업 신청, 주민 민원 전달은 기본이고 배부 물품이 내려오면 직접 집집마다 찾아야 했다.


박 이장은 "밖에서 볼 때는 행정사항을 전달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마을의 크고 작은 행정업무가 모두 이장을 거쳐 갔다"며 "고령의 어르신이 많은 농촌에서는 이장이 행정과 주민을 잇는 손발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장 생활은 농촌 복지의 사각지대도 보여줬다. 제도상 기준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는 벗어나지만 실제 생활은 어려운 어르신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옆집은 지원을 받는데 다른 어르신은 기준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형편이 어려운데 제도 밖에 있는 분들을 보면 가장 안타깝다."


고령 주민과의 소통법도 현장에서 배웠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다니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 어르신이 많자 박 이장은 기다리는 대신 경로당으로 향했다.


"노인일자리가 끝날 무렵 경로당에 가면 어르신들이 대부분 모여 계신다. 그때 안부도 묻고 필요한 이야기도 전한다. 어르신들을 제 방식에 맞추기보다 제가 어르신들의 생활시간에 맞추는 게 훨씬 빠르다는 것을 배웠다."


그의 행동력이 두드러진 사례가 춘양면 LPG배관망 구축사업이다. 2025년 사업이 본격화되자 도로 굴착과 자부담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박 이장은 장기적으로 난방비와 연료 사용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당장 공사가 불편하고 자부담도 있어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도 앞으로 난방비를 줄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한 집 한 집 설명했다. 지금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때 열심히 설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 이장이 바라보는 농촌의 미래도 남다르다. 인구감소와 청년 유출이 일상적인 화두가 됐지만 농촌을 '떠나야 할 곳'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년이 도전할 빈자리도 많다는 생각이다.


"도시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만이 정답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 살아보니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농촌은 청년에게 기회가 없는 곳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활동은 의양1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의용소방대와 자율방범대에서 주민 안전을 챙기고, 생활체육 테니스 동호인으로도 활동한다. 2년간 송이오픈테니스대회 위원장을 맡아 지역 밖 동호인과 봉화를 연결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활동처럼 보이지만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가 꿈꾸는 의양1리의 미래도 결국 사람을 향한다. 고령 주민들이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텃밭과 정원을 가꾸고 평생교육도 즐길 수 있는 실버타운 형태의 공동생활 공간이다.


박 이장은 "농촌 어르신들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라며 "같이 밥을 먹고 무언가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어울릴 공간이 생긴다면 노인복지를 넘어 마을 공동체를 다시 잇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에서 '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익숙하다. 그러나 박기혁 이장의 삶은 그 현실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을이 한 아이를 함께 키웠고, 그렇게 자란 청년은 이제 늙어가는 마을의 손발이 됐다.


박 이장이 말하는 '젊은 농촌'은 청년 몇 명을 불러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 다시 공동체를 책임지고, 그 공동체가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있는 선순환을 되살리는 일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르신들을 돌봐야 할 때입니다."


'봉화군 최연소 이장'이라는 나이보다 그의 이야기가 더 눈길을 끄는 이유는 바로 그 한마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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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오

현장의 작은 변화 속에서 지역의 미래를 읽는 보도로 봉화의 오늘과 내일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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