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월과 작별할 수 없는 이유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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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5 18:38  |  발행일 2026-10-26
조현희기자<문화팀>

조현희기자<문화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물었다. 수없이 인용된 이 문장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섰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역사는 진보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정말 그럴까? 이 질문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우리의 현재를 구원한 그 쓰라린 과거가 침묵과 모욕을 강요받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였다. 다시 돌아가 반대로 물어야 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대구의 많은 시민들에게 '10월항쟁'을 알리는 건 일종의 예의이자 의무였다. 수많은 희생, 살아남은 이들의 아픔이 없었다면 내겐 이를 취재할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든 국가폭력과의 싸움은, 일단은, 무모하다. 그 무모한 싸움에 유족들은 나섰다. 어쩔 수 없고, 방도가 없는 일들이 참 많았지만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가족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한 싸움만은 아닐 것이다. 참혹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도 그 안에 있었으리라.


대구의 정체성을 부정할지 모르는 보도,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누구 한 명이라도 움직일 수 있길 바랐다. 봉인된 역사는 어떻게 잊혀왔는가. 유족들은 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이번 취재가 필수불가결했다. 안타깝게도 권력은 여론을 몰랐다. 10월항쟁을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십 년간 이어져왔지만 이를 뒷받침할 행정과 제도는 턱없이 부족했다. 집단기억의 부재를 구조로 치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여기에 있다.


공공영역에서 항쟁을 규명하는 일이 우리의 모든 곤궁을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거치지 않고는 국가와 시민의 신뢰 계약을 갱신할 수 없다. 봉인된 역사를 이대로 놔둔 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10월항쟁은 변화를 발설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결조건이다. 80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참상의 진실을 밝혀내 다시는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한 영령들이 이름을 되찾고 안식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 결단만 하면 풀 수 있는 이 문제는 공방 가능한 논제가 아니다.


파시즘적 시대는 인간을 폭력의 기계로 만들었다. 그런 역사에 대한 환멸감에 시달렸던 기억이 떠오르지만 이를 취재한 시간은 밀도가 높았음이 분명하다. 보도 후 국회는 10월항쟁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의회에서도 기록 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이 오기까지 누군가는 얼마나 열망했던가.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초대 회장은 "항쟁이 제대로 기록되고 후손들에게 알려진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시월과 작별할 수 없는 모든 이유가 그녀의 한마디에 함축돼 있다. 80주년, 마땅히 그럴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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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현실적 낭만주의자. 용기와 진실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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