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음악극 '바람꽃'은 대구 북구 출신 소설가 이태원의 소설 '초야'를 각색한 작품이다. 1970년대 모진 세월을 살아낸 기생 초향과 그의 딸 성애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삶의 존엄성을 그려냈다. 어울아트센터 제공
좋은 작품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대구 북구 출신 소설가 이태원의 소설 '초야'를 각색한 창 음악극 '바람꽃'도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지난해 행복북구문화재단 어울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창작극으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의 '문예회관 특성화 지원사업'에 올해까지 2년 연속 선정된 작품이다.
작품이 원작에서 가져온 부분은 10% 정도에 그치는데, '바람꽃'은 원작을 모두 구현하지 않아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원작의 하룻밤에 머물지 않고 두 여성의 삶으로 확장된다.
창 음악극 '바람꽃' 장면. 어울아트센터 제공
그 주인공은 1970년대 명월관을 운영하는 기생 초향과 그의 딸 성애다. 당시 교육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성애는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매춘관광이 웬 말이냐" "남성 권력의 하수인 기생은 반성하라" 같은 여성인권운동의 구호가 곧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말처럼 들려 더욱 부끄럽다. 여기에 기생 딸이라는 이유로 남자친구 민기의 부모님에게 멸시까지 당하면서 모녀의 갈등은 더 깊어진다.
두 사람의 얽힌 이해관계는 초향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풀린다. 초향은 일찍 남편을 잃었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 이유를 초향에게서 찾으며 구박하고 괴롭혔다. 결국 초향은 벼랑 끝에 서지만, 마을 청년의 한마디와 벼랑 끝에 핀 꽃 한 송이 덕분에 마음을 다잡는다.
"다 지나가요. 바람도, 세월도. 거기 꽃잎이 바람을 원망해요? 자리를 원망해요? 지나면 지나는 대로 날리면 날리는 대로."
'바람꽃'이라는 제목은 이 대목에서 나왔다. 극 중 어린 초향(길례)이 '바람개비'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데, '벼랑 끝에 피는 꽃'이라는 부제와 맞닿아 고통의 굴레 속에서도 살게 한 이유가 된다. 초향의 담담한 고백을 듣게 된 성애는 그제야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른다.
창 음악극 '바람꽃' 장면. 어울아트센터 제공
극은 가혹한 시대에 겪은 부당함을 논리로 풀어내지 않는다. 꿋꿋이 살아낸 초향의 삶이 곧 저항이며 생존의 증거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서사는 자칫 신파로 흐르기 쉽다. 초향의 처절한 삶은 충분히 신파적 소재가 될 수 있고, 창을 곁들인 점도 구시대적으로 느껴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작품은 이를 필연적 감동으로 바꿔낸다. 김현규 연출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대사와 깔끔한 무대 구성이 구시대적 거부감을 덜어냈다.
초향의 삶과 성애의 감정이 복합적인 만큼, 주변 인물은 유쾌하고 단편적으로 묘사하고 간결한 화법으로 완급을 조절했다. 성애의 친구 수정과 남자친구 민기는 비교적 현대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로서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민기의 부모는 성애를 탐탁지 않아 하지만, 민기가 "출신으로 따지지 말고 사람을 먼저 보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러한 지점이다.
작창 및 소리지도를 맡은 고수 역의 홍준표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홍보가 이수자. 어울아트센터 제공
재연에서는 판소리의 비중이 커졌다. 작창과 소리 지도가 더해졌고, 고수 역이 추가됐다. 고수는 특정 배역을 맡기보다 종종 '제4의 벽'을 허무는 역할이다. 극은 초반부터 초향이 관객과 소통하며 시작하는데, 자신이 소리꾼이자 배우라고 소개하며 고수와 호흡을 맞춘다. 고수가 목 상태가 좋지 않다며 관객의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초향은 창(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부분)과 아니리(장단 없이 말로 하는 대목)를 하고, 중간중간 발림(부채 펴기 같은 몸짓)을 넣어 자연스럽게 장면을 전환하기도 한다. 여기에 고수의 추임새가 더해지고 돌출 무대를 활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초향의 딸 성애 역의 배우 곽수민. 어울아트센터 제공
이러한 요소가 잘 어우러진 데는 배우의 역할도 컸다. 초향 역의 배우 설화는 창과 뮤지컬 발성 사이의 타협점을 잘 찾아냈고, 감정을 전하기에 충분한 연기를 보여줬다. 딸 성애 역의 배우 곽수민은 청량한 음색과 명료한 톤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른 배우들은 1인 다역을 넘나들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무대의 빈 곳을 꽉 채우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고수 역을 맡은 홍준표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홍보가 이수자도 극에 무게를 실었다.
초향에게 산다는 것은 노래와 춤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성애의 친구 수정의 바람대로 대학 국악동아리에서 정기 공연을 위해 초향이 소리를 가르치며 끝난다. 관객 모두가 학생이 되어 배우들이 나눠준 바람개비, 바람꽃을 들고 진도아리랑을 부른다. "하염없이 흩날린다 해도 피어난 것만으로 안녕이어라." 막이 내린다.
창 음악극 '바람꽃' 무대 모습. 어울아트센터 제공
정수민
공연장 지박령. 지역의 문화·예술 이야기를 구석구석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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