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대구의 사라진 30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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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28 16:59  |  수정 2026-10-29 08:34  |  발행일 2026-10-29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는 황혼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거쳐 온 신비로운 도시들을 이야기한다. 건물은 언젠가 무너지고, 세대는 바뀔 것이며, 화려했던 옛 흔적도 결국은 먼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가 야만의 시간으로 회귀하지 않고 고유한 숨결을 지키며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그 답을 '기억의 전수'에서 찾는다. 과거의 삶을 잊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인간의 능력이 곧 도시라는 문명을 지속시키는 불씨라는 뜻이다.


대구시가 그 불씨를 살리기 위한 시사(市史) 편찬에 나섰다. 1995년 여섯 권의 시사를 펴낸 후 무려 30년이라는 기나긴 침묵 끝에 찾아온 반가운 소식이다. 1973년과 1995년 두 차례 시사를 발간한 뒤 대구는 오랫동안 시사 편찬에 손을 놓고 있었다.


기록이 멈추어 있던 그 30년 동안, 대구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민선 지방자치가 30년을 넘겼고, 2003년에는 지하철 참사의 아픔을,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고통을 겪어냈다. 도시의 경계도 달라졌다. 달성군에 이어 군위군까지 품으며 도시는 거대한 스펙트럼으로 확장됐다.


다른 도시들의 행보를 보면 아쉬움은 더욱 크다. 서울은 '서울역사편찬원'이라는 견고한 독립 기관을 세워 '서울 2천년사'를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시대별로 묶어냈고, 시민들의 목소리로 구술자료집을 엮어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인천은 해마다 주제별 시사를 내는 연차 사업을 이어 왔으며, 지난해에는 '인천광역시 30년'을 발간했다. 부산 또한 30년 전 시사를 22권의 세련된 주제사로 탈바꿈시키는 중이다. 이들 도시는 쉼 없는 기록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30년의 공백을 넘어 시작된 대구시의 시사 편찬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올해 편찬위원회 출범을 시작으로 역사 총서 발간과 학술회의 등 의미 있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시작을 얼마나 빠르게 또 흔들림 없이 꾸준하게 이어가느냐다.


시사 편찬은 단발성 이벤트나 일회성 기념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시가 숨 쉬는 한 멈추지 않는 지속적인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시사편찬위원회는 책을 펴내는 해에만 반짝 존재했다 사라지는 조직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도시의 기억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이 끊이지 않고 쌓이는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한시적으로 위원회를 운영했다 해체하는 바람에 편찬 활동이 끊겨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울산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멈춰 섰던 시사 편찬이 다시 시작된 데는 민선 9기 추경호 시장의 결단과 강력한 의지가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이 귀한 물꼬가 헛되지 않도록 조직과 전담 인력, 예산이라는 튼튼한 버팀목을 장기적으로 구조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그 기록의 문턱은 낮고 다정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와 구술을 담아내고,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도록 디지털로 열어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사는 도시의 찬란한 영광뿐만 아니라, 부끄럽고 아픈 상처까지도 정직하게 품어 안는 거울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서술의 독립성과 엄정한 균형도 지켜져야 한다. 30년의 공백을 넘어 비로소 시작된 이 기록의 첫걸음이 대구의 진짜 얼굴을 찾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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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입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새롭게, 의미있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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