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식탁지도’가 바뀐다 ②] 축구장 5.5배 규모…영천, 미래 먹거리 ‘아열대 작물’ 전초기지 도약
기후변화는 작물의 생산성 감소는 물론 농업 전반에 광범위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물 부족, 토양 황폐화, 병해충 확산 등을 야기해 영농의 불확실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의 농촌 사회는 일손 부족 현상이 고착화한 상황이다. 새로운 인구 유입은커녕 매년 한창 일할 청년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경북지역 농촌도 마찬가지다.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을 살리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농가들은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스마트팜'도 그중 하나다. 스마트팜은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로봇 등 첨단기술을 접목해 노동력을 줄이고 보다 안정적인 작물 생산이 가능하다. 일손 부족 문제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경북 영천 북안면에 위치한 '아열대스마트팜 단지'를 둘러보고 향후 경북 농업의 방향을 짚어본다. ◆ 기후변화 대응 시험장…20여 종 작목을 키우는 영천온실 영천 아열대 스마트팜 단지는 2021년~2025년 총사업비 148억원(도비 50억원·시비 98억원)을 들여 조성됐다. 시설 규모는 3만9천531㎡에 이른다. 이는 국제 규격 축구장(약 7천140㎡)의 5.5배 정도 크기다. 온실 4개 동과 연구관리관에 이어 실습형 임대온실도 올해 준공될 예정이다. 단지 운영의 핵심은 아열대 작물의 재배 데이터 확보에 있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관련 데이터를 확보한 뒤 농가에 아열대 작물 표준 재배법을 보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온실은 고온동과 저온동으로 나뉘어 애플망고·파파야·바나나·레몬·만감류·키위·백향과 등 20여 종 아열대 작물의 성장 과정을 동시에 관찰한다. 온실에서 가장 눈에 띈 작물은 애플망고였다. 배수미 영천시농업기술센터 아열대연구팀장은 '유목기'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애플망고는 화분(포트) 재배로 나무 크기를 제어하며 키우는데, 5년 이상 지나야 수확이 안정된다. 묘목을 어린 단계에서 들여와 병해·생리장해(병원균·해충이외 요인으로 일어나는 장해)를 계속 관리해야 한다. 바나나와 파파야도 지난해 여름, 입식 후 생육 데이터를 축적하는 단계였다. 배 팀장은 "아열대 작물이 미래 먹거리로 볼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수익성만 보고 재배하면 위험하다"고 귀띔했다. 아직은 투자 대비 수익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설 조성과 운영 비용도 개별 농가가 부담하기엔 만만찮다. 그는 "아열대 작물 위주의 스마트팜은 에너지 비용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성 부담이 크다"며 대안으로 '점진적 전환'을 추천했다. 한 번에 과도한 투자는 피하고 기존 농업에 아열대 작물을 부수작물로 조금씩 늘려가라는 조언이다. 이 같은 농가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영천 아열대 스마트팜 단지는 교육·임대온실·공동실증을 운영한다. 지난해 아열대작물 창업교육 기본과정(4~11월 14회·64시간)에 28명이 참여, 20명이 수료했다. 올해는 교육과정을 3~11월 20회(90시간)로 확대한다. 또 수료생 대상 심화과정(9회 36시간, 10명)을 별도로 운영해 작목 선택과 1대 1 컨설팅, 현장실습을 붙일 계획이다. 특히 3천522㎡ 규모로 조성하는 실습형 임대온실은 '소득 공백'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공동구역 784.2㎡와 임대온실 2천737.8㎡(3개 구역)로 나뉘며, 구역당 약 912.6㎡ 수준이다. 임대기간은 2년(최대 1년 연장), 창업교육 기본과정 이수자 중 창업희망자에 입주자격이 주어진다. 임대농가들은 유목기 동안 임대 온실에서 포트재배를 통해 키운 뒤 성목을 창업농가 온실로 옮겨 심어 소득 단절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영천 아열대 스마트팜 단지가 제시하는 유목 보급 경로는 '4단계 사다리'로 정리된다. 1단계는 단지에서 아열대 과수 재배를 실증하며 적응성과 관리변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2단계는 전문교육을 통해 재배역량을 키우는 단계로, 기본교육에 이어 심화교육까지 설계해 '작목선택'과 '환경제어 운용'을 실제 창업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3단계는 임대 온실에서 유목을 키우며 소득 단절 구간을 줄이고, 4단계는 창업지원을 통해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구조다. 아열대 작물을 단순히 키워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셈이다. 올해는 '농업인 제안형 공동실증재배'도 추진한다. 농업인이 심고 싶은 작목을 제안하면 단지 내 실증공간에서 기관과 함께 식재·공동 재배를 하고, 생육 데이터 분석으로 결과를 도출·공유하는 방식이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설·난방비 위험을 분산시키고, 실제 수요 기반으로 '영천 적응형' 작목을 발굴·보급하겠다는 취지다. 조영숙 경북농업기술원 원장은 스마트팜의 본질에 대해 "경험과 노동 중심의 농업을 데이터와 기술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환경·생육·영농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비료 공급을 자동화하고 병해충 발생을 예측, 대응함으로써 생산성과 품질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 원장은 "경북은 기후변화와 노동력 부족이 동시에 닥쳤고, 기상에 민감한 과수·시설작목 비중이 높다"며 "스마트팜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경북 스마트팜 정책의 성과로 "연구가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 성주 참외과채류연구소에서 참외·딸기 수직재배와 수경재배 모델을 개발하고, 인공지능(AI) 영농관리시스템 '참외톡톡'으로 영농일지 작성, 환경 분석, 맞춤 컨설팅을 지원해 농가의 품종 선택과 재배방식 등 의사결정을 돕고 있다. 또한 이상기후 대응을 위해 저일조기 보광재배(인공광으로 작물의 광합성·생육 촉진), 이상고온기 근권부 국부냉풍(시설작물 뿌리 주변에 국소적으로 냉각 바람 공급) 등 '표준재배모델'을 축적해 스마트팜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인력양성 분야에서는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청년창업보육과정(입문 2개월→교육형 실습 6개월→ 경영형 실습 12개월)을 통해 2019년 이후 212명을 배출했고, 이 중 105명이 경북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스마트팜의 발전 가능성은 크다. 조 원장은 "스마트팜이 개별 기술 도입을 넘어 농업 구조 전환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육·환경·영농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시스템이 스스로 제안·제어하는 AI 기반 자율형 농업을 강화하고, 수직재배·식물공장 등 공간 활용형 모델을 확대해 기후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설원예에만 머물지 않고 사과·복숭아 등 과수와 노지까지 센서·드론·로봇 기반 기술을 확산해 경북 주력 품목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장기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스마트팜이 정답이 아닐 수 있지만 기후변화가 재배품종 지도를 바꾸고, 인력감소가 농업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북 농업이 선택해야 할 길은 데이터로 생산을 안정화하되 과투자를 경계하고 실패비용을 낮추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과 주산지 한복판에서 망고가 자라는 풍경은 변화의 신호탄이고, 그 변화가 산업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스마트한 전환 설계'에 달려 있다"며 "기술만으로는 농업이 바뀌지 않는다. 데이터와 사람, 교육과 보급 체계가 함께 움직일 때 '식탁지도'의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박종진·정운홍기자 pjj@yeongnam.com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