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 18년 .5] 김성근 감독

  • 입력 1999-03-10 00:00

90년 준우승을 차지한 전임 정동진 감독을 중도하차시킨 삼성은 '우승' 이라는 유일무이한 목표를 위해 철저한 관리야구를 지향하는 김성근 감독 을 전격 영입했다. 김 감독은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 모든 시간을 야구에 할애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집념이 남달랐다. 오전 4시에 김상엽을 불러내 투구교육을 시 켰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투수조련사, 승부사로 통하는 김 감독은 스파 르타식 강훈련으로 우승에 대한 의욕을 보였고, 선수들은 팀창단 이후 가 장 혹독한 훈련을 소화해 냈다. 그러나 팀성적은 오히려 하락, 김 감독을 당황케 만들었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인 91년 70승55패1무로 해태, 빙그레에 이어 3위에 올라 90년 2 위에서 한단계 내려 앉았다. '우승 청부업자'로 불리는 김 감독의 스파르 타식 훈련으로 부상선수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OB(84~88년)와 태평양(89~90년) 사령탑을 지낸 김 감독은 이를 감안해 92년에는 훈련강도를 다소 낮추었다. '훈련 지상주의자'로 통하던 그로선 파격적인 단안이었고, 자신의 통솔법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 었다. 삼성은 그러나 그해에도 67승57패2무로 4위를 차지, 또다시 한계단 추락했다. 구단측으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우승만을 생각하며 달려왔던 김 감독도 구단으로부터 선수 장악력이 부족한 감독으로 낙인돼 임기를 1 년 이나 남겨 두고 지휘봉을 놓아야 했다. 김 감독의 퇴진을 놓고 많은 전 문가들은 단시일내에 우승만을 고집했던 구단과 선수들의 구심점이 되지 못한 김 감독에게 각각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자신 이 맡았던 팀중 가장 좋은 팀'에서 불명예를 당했고, 선수단도 자율야구와 관리야구의 쳇바퀴속에 또한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김 감독 재임시 선수단은 김상엽.김태한.이태일.류명선.강기웅 등 소장 파와 김성길.김용철.이만수.박승호.신경식 등 노장파가 팀전력의 절반을 양분하고 있었다. 팀의 에이스였던 김상엽은 91.92년 각각 6승과 8승만을 올린 반면, 이태일은 10승과 13승을 기록해 팀내 유일한 10승대 투수가 됐 다. 강기웅은 91.92년 연속 3할대의 타율을 올려 노장 이만수와 더불어 팀 공격을 이끌었다. 김 감독이 부임하면서 스카우트 해온 조범현, 최일언, 윤석환, 이광길 등은 부진을 면치 못해 감독에게 실망만 안겨 주었다. 90 년 43만명이던 대구구장 관중수도 91년 35만명, 92년 31만명으로 격감했다. <최영호기자 cy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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