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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에베레스트 원정대 발대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계명대 원정대원들. (맨오른쪽부터 고 박무택 원정대장, 백준호 부대장, 여섯번째가 장민 대원) |
에베레스트 원정길에 나섰다가 숨진 채 발견된 박무택·백준호·장민씨는 계명대 산악회는 물론, 대구지역 고산등반을 이끌 중추적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박씨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8천m이상 고봉 6개나 등정한 국내 대표적인 고산등반가이며, 백씨와 장씨는 대구산악계의 차세대 대표 주자로 부상했던 인물이다. 이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항상 선배들을 존경하며 후배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산악인들이어서 동료들의 아픔은 더욱 컸다.
고산등반가로 널리 알려진 박무택씨의 사망소식에 산악인들은 대구 산악계의 거목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1989년 약관(20세)의 나이에 히말출리(해발7천893m) 등반으로 히말라야에 발을 딛기 시작해 1996년 마침내 해발 8천35m의 가셔브룸 2봉 정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고봉 정복은 2000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세계 14대 거봉 중에서 난도높기로 손꼽히는 3대 거봉인 캉첸중가(8천586m·세계 3위봉), K-2(8천611m·세계 2위봉), 시사팡마(8천27m)를 1년여만에 연이어 정복했다.
2001년 촐라체(6천440m) 겨울 등정을 세계 처음으로 성공시킨데 이어 2002년 마침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천848m) 정상을 밟았고, 지난해엔 로체봉에 올랐다.
히말출리 등반에서 궂은 날씨로 등반대장을 잃고, 캉첸중가 등반에서 또다시 동료를 잃는 슬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고산 정복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않은 진정 산사나이였다. "여태까지 좋은 선배들 덕분에 해외원정에 많이 나설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내가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되돌려줄 생각"이라고 말하던 산사나이 박씨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채 그토록 좋아하던 산속에 영원히 묻히고 말았다.
OK목장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백준호씨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1993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을 시작으로 2000년 초오유(8천201m)와 2002년 로체봉 정상에 차례로 올랐다.
에베레스트 정상정복 후 하산하다 실종된 동료대원 박씨와 장씨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셰르파 2명과 함께 험난한 산악지대를 찾아헤매다 변을 당할만큼 동료애가 남달랐다.
계명대 수학통계학과에 재학 중인 장씨는 1996년 계명대 산악회에 가입한 후 2002년 20대 중반에 시사팡마 등정에 성공할 만큼 고산 등반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역 산악계로부터 일찌감치 차세대 대표주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대구산악연맹 곽규열 사무국장은 "세사람 모두 성격이 좋아 선후배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었으며, 앞으로 대구지역 산악계, 특히 고산등반계를 이끌 너무나 아까운 사람들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함께 원정길에 오른 계명대 원정대원들은 "박 대장은 설맹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을 부축하던 후배대원인 장씨가 탈진상태를 보이자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채 '장씨를 먼저 하신시키겠다'는 마지막 무선교신을 했다"며 박씨의 남다른 후배사랑에 더욱 마음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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