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푸드] 와인야담(2)-테이블 13에서

  • 입력 2008-04-18   |  발행일 2008-04-18 제38면   |  수정 2008-04-18
와인의 제맛 느끼려면 음식도 '궁합'이 맞아야 합니다
[와인&푸드] 와인야담(2)-테이블 13에서
와인소스와 바질올리브소스가 감싼 등심스테이크.

◇…'테이블 13' 조리사가 메뉴보다 더 맛있다

본격적인 와인 공부의 출발점은?

음식을 그 옆에 매치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너무 와인에만 매몰되는 것 같군요. 고작 치즈와 샐러드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잘 매치시키려면 맛도 맛이거니와 시인 못지않은 상상력을 동원시켜야 됩니다.

영양학적으로 조화시키는 게 아니라 '미적 조화'라야죠. 글을 적을 때 필을 더 올리기 위해 좋은 음악을 옆에 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음식을 더 맛있고 멋있게 먹기 위해선 그 음식의 무게와 향에 맞는 와인이 얹힌다면 금상첨화겠죠.

대구에서 가장 실험적인 레시피(Recipe·조리법)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대구시 수성구 수성 아트피아 공연장 옆에 붙은 '테이블 13'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테이블 13의 음식보다 오너 셰프 홍재만씨의 어투와 동선이 더 맛있어 보입니다. 지난번 와인야담 그룹 인터뷰 때 참석자를 위해 기꺼이 음식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추천하는 와인과 거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와인에 대한 상상력만 풍부할 뿐 디테일한 정보를 그다지 많이 갖고 있지 않은 더듬수 와인족인 제가 혀를 정갈하게 하고 테이블 13으로 갔습니다.

홍 사장의 형과 동생도 이곳 조리사입니다. 형인 금만씨, 동생인 보만씨, 그리고 와인과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목사님 버전으로 해설해주는 재기발랄한 매니저 이성근씨 모두 테이블 13을 대한민국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만들기 위해 칼을 갈고 있습니다. 홍 사장은 시간만 나면 서울로 가서 와인 관련 미팅에 참석해 새로운 흐름을 대구로 갖고 옵니다. 메뉴도 나태한 걸 용납하지 못한답니다. 테이블 13은 들안길에서 히트 치고 최근 여기로 이전했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는 수수합니다. 인테리어보다 음식을 더 멋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들은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금강송 몇 그루 사이로 녹원맨션이 보이는 왼쪽 창자리에 앉았습니다.

◇…추천 와인과 음식을 먹어보니…

성악가에게는 성대, 연주가에게는 손, 미식가에겐 혀가 생명입니다.

아직 혀를 생명보험에 든 미식가가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시식 전엔 혀를 '중립기어'에 둬야 합니다. 일식에선 오차로 입을 헹구죠. 양식에선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빵이 입을 출발선으로 데리고 갑니다.

이날 등장한 와인은 남호주 킬리카눈사가 2005년 병입한 레드와인인 '킬러맨즈 런 쉬라즈(Killerman's Run Shiraz)'와 지난 해 뉴질랜드 배비치 와이너리에서 병입한 화이트 와인, '말보로 소비뇽 블랑(Marlborough Sauvigno Blanc)'입니다. 두산에서 제공한 테이스팅 노트에 따르면 '킬러맨즈 런쉬라즈는 진홍빛 풍부, 긴 피니쉬, 육류와 적합, 병입 전 2년 프랑스산과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 그래서 과일향과 모카풍이 일품, 부드러운 탄닌이 조화돼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이 너무 교과서적이고 대중과 교감하기 힘들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다시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와인은 제 혀를 무대 삼아 다양한 동작을 취합니다. 뉴욕의 재즈바 블루노트에 앉아 점잖게 테이블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따라잡는 정장 차림의 핸섬한 뉴요커. 물론 도시적 향수를 뿌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이 중요한 것이라 알기에 나그네처럼 무작정 뉴욕을 떠나지 않습니다. 절제된 로맨티스트 같은 체취를 풍깁니다. 잠시 자신을 방기시키면서 황홀하게 증발시킨 뒤 다시 일로 돌아올 수 있는 냉정한 열정, 바로 그게 킬러맨즈 런 쉬라즈이죠."

와인 테스팅은 꼭 음악 분석 같습니다. 특정 노래에 담긴 가사와 리듬, 멜로디, 템포, 박자 등을 캐내야 합니다. 킬러맨즈를 먹는 순간 저는 탄닌 성분만 고약하게 혀를 자극하고 별다른 여운을 남기지 못하는 저가 레드 와인을 맛볼 때와 확연히 다른 기분을 느꼈습니다. 가격요? 이 집에선 7만원선이라네요.

말보로 소비뇽 블랑에 대한 기억?

제주도 서귀포 오후 3시의 햇살 좋은 길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리스 해안의 바람도 조금 묻어 있습니다. 풋사과, 야생 허브향이 첼로 음처럼 퍼집니다.

등심스테이크라서 미디엄 레어로 굽도록 했습니다. 3시간 동안 오븐에 단호박을 굽고 거기에 볶은 양파, 닭육수를 베이스로 해 우유와 크림을 넣고 빚은 단호박 수프는 혼자 먹기 아까웠습니다. 발사믹 식초는 3만~4만원선의 이탈리아산 데체코 모데나를 사용하더군요. 소금은 시실리 암염, 치커리와 라디치오, 크레송(물냉이), 관자 위에 올라간 철갑상어 알도 전채 요리 액세서리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피클도 수공품입니다. 조선오이(백다다기)로 직접 만듭니다. 후추, 정향, 허브 등을 넣고 끓여 그 물에 썬 오이를 3일간 절여 사용합니다. 허브도 바질, 오르가노, 민트 등 10여 종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홍 사장의 동의를 얻어 주방을 둘러봤습니다. 한 통에 30만원 하는 프랑스산 송로버섯이 보였습니다. 비트(사탕수수 뿌리), 월계수 잎, 10만원짜리 푸아그라(거위간), 파스타는 10여종, 이탈리아산 와인식초 등이 시선을 잡습니다. 에스프레소와 달리 찬물로 10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우려내는 커피인 '더치', 여느 레스토랑에선 볼 수 없는 디저트입니다. 이날 먹은 풀코스 등심스테이크는 5만5천원. 와인리스트 500여종. 코키지 차지 무료. (053)763-3771

[와인&푸드] 와인야담(2)-테이블 13에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발사믹식초·리코타치즈로 만든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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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 곁들인 관자구이와 새싹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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