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장아찌 이야기

  • 입력 2008-07-04   |  발행일 2008-07-04 제41면   |  수정 2008-07-04
삐딱이 가수 강산에, 대구서 장아찌 사갔다
장아찌에 빠진 천연염색 전문가 양혜진씨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장아찌 이야기

전남 순창 이기남 할머니 국내 고추장 장아찌 대모…무장아찌 최소 3년 묵혀야
대구는 6년전부터 울릉도 명이나물 장아찌 붐…장아찌 논문, 동호회까지 생겨

◇…오미별곡(五味別曲)

간.

국어사전은 '짠 조미료의 통칭'으로 적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적당한 짜기'죠.

예전 종부들은 시댁 어른이 원하는 간이 뭔가를 간파해야 제대로 대접을 받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간을 모르면 시어른의 눈밖에 나고, 결국 남편한테 소박맞아 비련의 여인으로 추락하기 십상입니다. 식재료를 장악하는 것,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간입니다. 식재료의 숨은 맛을 더욱 빛내는 게 바로 간입니다. 특히 '짠맛장악'이 너무 힘듭니다. 단것은 많이 달고 덜 달아도 넘어갈 수 있지만 짠것은 일정 한도를 넘어가면 목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음식의 간을 맞추는 첫단추는 소금 투입량입니다. 그래서 예전 반가에선 장을 목숨처럼 여기죠. 그래서 좋은 소금 확보에 올인합니다. 예전엔 꽃소금이 없고 모두 천일염을 사갖고 2~3년 간수를 뺀 뒤 사용합니다. 잘 숙성된 소금은 짜면서도 달죠. 그래서 좋은 장은 짜면서도 답니다. 참고로 커피에 설탕대신 소금을 넣어보세요. 더 풍부한 맛이 납니다. 소금의 구성성분인 나트륨과 염소는 식·동물의 육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태아의 집인 자궁, 그 안에 짠맛이 감도는 양수가 있어야 태아가 살 수 있습니다.

안동 간고등어 신화의 산파역인 간잽이 이동삼씨는 짬의 본질을 간파했겠죠. 간잽이, 바로 생선을 소금으로 절이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수라상을 총괄하는 숙수(熟手)나 제조상궁(提調尙宮)의 혀는 늘 한지나 풀먹인 한삼모시처럼 날이 서 있어야만 합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이 날이 무뎌집니다. 1908년 일본에서 화학조미료의 시조인 아지노모도(국내로 건너와 미원이 되죠)가 탄생하면서부터 혓바닥에 박힌 맛세포 미뢰가 치명상을 입습니다. 뿐만 아니라 1954년 태어난 럭키치약이 한국민의 혓바닥을 마구 뭉개버립니다.

◇… 짠맛을 정복하라

짠맛을 알아야 단·쓴·신맛 등을 알 수 있죠.

참, 교과서에서 배운 혀의 맛지도가 틀렸다는 것 아세요. 단맛은 혀의 앞부분, 신맛은 양 옆, 쓴맛은 목구멍 부분, 짠맛은 혀끝 옆의 가장자리인 줄 알았을 겁니다. 2001년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 아메리칸'에 따르면 '모든 맛은 혀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감지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기존의 맛지도는 1800년 후반에 보고된 연구결과를 잘못 해석해서 20세기초에 작성한 것으로 이제껏 반복 인용됐다네요. 통상적으로 맛은 네 가지로만 알았는데 제5의 맛이 있습니다. 바로 '감미(Umami)'입니다. 요즘 식도락가들 음식을 한입 먹었을 때 감치는 맛이 느껴져야 그제서야 맛있다는 말을 하죠.

대충 생선이 소금에 염장돼 발효되면 젓갈, 식물류는 장아찌가 됩니다. 장을 머금은 소고기는 장조림이죠.

대구는 오래전부터 콩잎 장아찌가 유명했죠. 매년 9월쯤 누렇게 변한 콩잎을 따서, 소금물이 들어간 항아리에 넣어 돌로 눌러 한달 쯤 쓴맛을 삭혀냅니다. 다음 한번 삶아 짠 뒤 갖은 양념(멸치액젓, 고춧가루, 마늘, 물엿 등으로 버무려 재어놓고 1년쯤 먹을 수 있습니다. 요즘 수성구 수성시장에 가면 콩잎 장아찌 가게가 있습니다. 영덕 여느 식당에 가면 고래불 해수욕장 등 영덕권 해변에서 자생하는 방풍나물도 장아찌 형태로 지역 식당가에 등장했으면 좋겠네요.

◇… 순창 장아찌 할매 이기남

전남 순창은 고추장의 메카죠. 그 메카의 좌장격은 모르긴 해도 순창고추장 장아찌의 신지평을 연 이기남 할머니(86)일 겁니다. 이젠 한식하는 이들 사이에 이기남하면 장아찌의 대명사로 대접하죠. 순창 IC에서 가까운 가남마을에 있는 이 할머니는 곡성군 옥과면에서 태어나 18세때 순창 부자 권씨 문중 종부가 됩니다. 현재 동아, 굴비, 감 등 30여가지 장아찌를 갖고 있는데 그 집에 가면 100년 먹은 간장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피부색이 고운 걸 보니 장아찌 효과를 한몫 본 모양입니다. 요즘 이 할머니 주가가 상당합니다. 대형마트 관계자도 한수 배우려고 찾아옵니다. 웰빙바람 때문이겠죠. 식품영양학과 교수들이 짠 음식이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논리를 펴면 "집안에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서 정색합니다. 하여튼 장아찌는 식품과학 이상의 아우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간단하다는 무장아찌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네요.

밥상에 오르려면 최소 3년이 걸립니다. 가을에 된서리 맞은 청무를 일단 간수 뺀 천일염에 절여 한 겨울을 납니다. 이듬해 4월에 끄집어 내 물기를 말린뒤 고추장속에 넣습니다. 2~3개월 지나면 무에서 빠져나온 수분 때문에 독 안이 흥건해집니다. 계속해서 탈수 단계를 거칩니다. 다시 새 고추장에 박아 3~4개월 지나면 또 물기가 스며나옵니다. 이때 수분과 염기가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그해 가을에 새 고추장에 넣어 겨울을 난뒤 3년째 되는 봄에 장아찌가 상에 오릅니다. 첫해와 달리 곶감속처럼 붉은 기운이 강해집니다.

◇… 대구의 장아찌 고수

구미1대학 호텔조리계열 김귀순 교수(49).

그녀는 요즘 장아찌 연구에 푹 빠져있습니다. 조만간 국내에선 처음으로 장아찌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할 모양입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장아찌는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0년까지 염장해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간장의 경우 마늘, 된장은 풋고추· 깻잎, 고추장은 가죽나물, 산초, 마늘종, 더덕 등이 어울린다고 합니다.

김 교수의 원천기술이 스며들어간 곳이 바로 수성구 범물동 숯불갈비 전문점 용지봉입니다. 안 살림을 책임진 변미자씨는 2002년쯤 지역에선 처음으로 울릉도 산마늘잎으로 만든 명이 장아찌 붐을 일으켰고 현재 가죽나물, 마늘, 냉이, 당귀 등 10여종 이상 갖고 있습니다. 특히 고추장에 박아놓은 제피와 가죽 장아찌는 3년 이상 됐습니다.

이밖에 청도는 감 장아찌를 개발했고, 경산 와촌에 있는 흥부네 박터진집에선 토마토·뽕잎·새송이버섯 장아찌가 유명합니다. 또한 달성군 가창면 대림생수 남쪽에 있는 옻닭 백숙 전문점 '토담집'과 가창면 우록리 '큰나무집'도 20여가지 장아찌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흙물 들이다가 이젠 장물 들이죠 장아찌 식당도 곧 문 열거예요"

'삐딱이 로커' 강산에한테 장아찌를 판 여자가 있다.

지난달 29일 밤, 강산에와 한국 개그의 산증인 전유성이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남지장사 초입의 혜진공방에서 건배를 했다.

전유성은 가수 이동원처럼 서울 생활 정리하고 올해 청도에 정착, 팔조령 아래 도로변에 '니가 쏘다쩨'란 이름의 기상천외한 피자 & 짬뽕집을 개업했다. 강산에는 샌들 신고 특유의 패셔너블한 몸뻬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객석을 뜨겁게 달궈놓았다. 뒤풀이 자리는 혜진공방. 낯선 장소에선 말문을 닫는 강산에, 가죽나물을 먹더니 갑자기 말수가 많아진다. 그는 그녀가 한 통 선물로 줄줄 지레짐작했을 터. 하지만 양씨는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사 갖고 가'란 메시지를 날렸다. 강산에가 그녀의 아쌀함 때문에 흔쾌히 동의한다. 대신 그녀가 한 1주일 세탁하지 않아도 좋을 황톳물 들인 팬티를 몇장 선물했다.

그날 공방 여주인인 양혜진씨(49)가 라면과 돼지고기두루치기, 그리고 비장의 장아찌를 선보였다. 한때 승가에 반발쯤 들여놓았다가 속가로 돌아온 그녀, 90년대 후반 가창면 상원리 산골짜기에 은거, 광목에 황톳물을 들였다. 그런 그녀가 10여년만에 '장(醬)물 들이기'에 심취해 있다. 하지만 흙물 못지않게 장물 들이는 것도 터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건 지리산 해발 800고지에서 자생하는 개발딱지 장아찌. 현재 고사리, 옻순, 머위, 녹차, 곰취나물, 명이나물 등 12종류가 있다. 제일 힘드는 건 녹차와 산초 다스리기. 재료 특유의 향과 맛 살리기가 장아찌의 승부처란다.

"염장기간이 최소 2년 이상 되어야 깊은 맛이 난다. 간장에 가장 어울리는 건 고사리, 된장은 콩잎, 고추장은 가죽이 찰떡궁합. 그런데 나는 고추장은 별로다. 원재료 맛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기본기 연마는 끝났다. 지난달 공방 앞 숲에서 장아찌 시식회 겸 숲속의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전유성은 맛도 괜찮고 퍼주기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자기 가게에서 팔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양씨는 "아직은…"이라면서 후일을 기약했다. 왕겨불에 황토 돼지구이를 구울 줄 아는 양씨, 조만간 장아찌 전문 식당을 열 모양이다. 그때 장아찌를 대중화시킬 모양이다. 하여튼 죽이 맞는 그녀에게 전유성이 별명을 줬다. '양아찌'.

그녀가 제발 '양아치'로는 적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053)767-6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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