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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박보영은 아직 낯설다. 기억재생 능력을 최대치로 올려보아도 좀처럼 그녀의 이미지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말마따나 "치고 빠지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때문일까. 하지만 낯설음은 종종 편견으로 고착될 수 있다. 때문에 그녀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대중은 그저 반딧불이처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마는 숱한 신인연기자 중 한 명으로 박보영을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을 듯 하다.
EBS 청소년드라마 '비밀의 교정'을 데뷔작으로 조기종영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달려라 고등어', 그리고 주인공의 아역으로 등장했던 몇몇 정극드라마는 분명 연기자 박보영을 담기에는 넉넉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위치에서 박보영은 빛났다. 특히 작은 체구에서 가열차게 뿜어져 나오던 열정과 연기력을 고스란히 발산했던 '왕과 나'에서의 어린 소화의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녀의 존재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 궁금증의 답은 이제 스크린을 통해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중이다. 이미 개봉한 '울학교 이티'와 '초감각 커플'에서 숨겨졌던 매력을 끄집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당당히 주연의 위치에서 대중과의 쉽고 편안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그녀를 만난 이유도 극중 차태현을 압도할 만큼의 녹록지 않은 내공을 발산하던 영화 '과속스캔들'에서의 박보영의 실체가 궁금해서다.
"추운 겨울, 이 영화로 모두가 웃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친 박보영은 첫만남부터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상큼 발랄한 매력을 발산했다. "저는 재밌었는데, 기자님은 (영화를)어떻게 보셨어요?" 질문도 하기 전에 말꼬리를 이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같다. 그녀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양 마냥 재미있고 자신감에 차있다. "전 지금도 촬영할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와요. 특히 아들(황석현)과 아빠(차태현)가 등장하는 장면은 전부다 정말 웃겼어요."
'과속스캔들'은 가수 출신의 라디오 DJ 남현수(차태현)와 그 앞에 나타나 "나는 아빠가 중 3때 과속해서 낳은 딸" 이라며 쳐들어온 당돌한 미혼모 황정남(박보영)이 만들어가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자신을 알아주는 팬이 없어 섭섭하다"며 뾰로통한 그녀지만, 대신 화려한 싱글을 꿈꾸던 차태현에게는 일종의 스토커의 모습으로 암울한 미래상을 펼치게 만든다. 고1때 과속해서 낳은 여섯살 난 아들까지 대동하고서.
박보영은 인터뷰 내내 차태현을 아빠로 호칭했다. 두 달 남짓의 촬영기간이었지만 정말 한가족처럼 지내왔던 때문이다. "처음에는 뭐라고 하셨던 아빠도 이젠 그렇게 부르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세요. 아들도 저를 엄마라고 부르는데요, 뭐. 그런데요. 아빠가 너무 순수하세요.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진짜로 모르는 것이 많더라고요.(웃음)"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외모에 나름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그녀다. 그래서 최근까지 빨리 나이를 먹고 성숙해보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다. 열 아홉살의 그녀가 미혼모 역할을 당당히 선택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듯.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엄청 고민했어요. 애가 애를 달고 다닌다면 극의 리얼리티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죠. 하지만 이 작품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감독님은 부담을 안가져도 된다며 힘을 보태주셨어요. 아직 철이 안난 애엄마 설정이라면서 말이죠."
'과속스캔들'은 신예 감독 특유의 재기 발랄함이 돋보이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개성 강한 캐릭터, 그리고 통통 튀는 대사들의 절묘한 조화가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순가련형의 순진한 외모와는 달리,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를 지지 않는 꼬장꼬장한 황정남 역의 박보영일 것이다. 실제의 성격도 정남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그녀에게 '만약 차태현과 스캔들이 났다면' 이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빠랑 스캔들 나면 저야 좋죠. 저에겐 무조건 득이 많이 될거예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중학교 시절 영상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든 단편영화가 청소년영화제에 입상을 한 계기로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됐다는 박보영. 벌써부터 '제2의 문근영'으로 불려진다는 말에 표정이 더욱 밝아진다. "무조건 감사하죠. 문근영씨가 쌓아온 사회적 위치나 배우로서의 영향력이 대단한데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사실 그래서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긴 해요."
하지만 연기로는 결코 문근영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 "언제까지나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 잘 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며 열의에 찬 각오를 내비친다. 사실 그녀는 근 2~3년간 모든 것을 소화하기 위해 나름 숨가쁘게 달려왔고, 그동안 체득했던 소중한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그래서 이제 자신있고, 당당하다.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이 너무 많아요. 아직은 고정된 이미지로 정해지고 싶지도 않고요. 여건이 되는 한 여러가지 색깔을 찾아보기 위해서 일단 많은 역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뒤를 돌아봤을 때 '이젠 안해본 역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도 차기작은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모두가 손가락질 할 정도의 아주 나쁜 여자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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